[책마을] 부엌 위치만 봐도 그 시대가 보인다

입력 2021-09-02 18:01   수정 2021-09-03 02:04

기원전 1세기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건축을 공학이자 예술이며 인문학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건축의 3대 요소로 기능과 구조, 미(美)를 강조했다. 건축의 기능을 발전시키려면 건축가는 인문학을 익혀 거주자의 욕망을 헤아려야 한다. 공학을 공부해 구조도 파악해야 한다. 예술성도 갖춰야 아름다움을 좇을 수 있다. 건축이 인류 문명의 축소판인 셈이다.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쓴 《나무, 돌 그리고 한국 건축 문명》은 한국의 건축양식이 발전해온 길을 따라 우리 문명을 상세히 짚어낸다. 전통 건축물부터 현대의 아파트까지 망라해 건축에 깃든 인문학적 지식을 설명한다. 조감도와 설계도, 건물 주변 지형 등 각종 도면과 사진을 활용해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몰입도를 높이려 전통 건축양식을 단계별로 설명한다. 첫걸음은 터를 잡는 일이다. 중위도권에 속하는 한반도 지형에선 남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더위와 추위를 막기 위해서다. 물이 빠지고 바람이 들려면 평지보다는 경사를 골라야 했다. 저자는 “목조건축 양식은 3세기에 전래된 후 20세기 중반까지 맥을 이어왔다”며 “돌과 나무라는 제한된 자원만 활용해 원하는 구조를 빚으려는 긴장감이 돋보이는데 철근콘크리트 건물에는 이런 게 없다”고 했다.

개항에 이어 1900년대 초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우리 건축물엔 ‘한옥’이란 이름표가 붙었다. 도시의 밀집도가 높아지면서 한옥은 개량됐다. 가장 극적으로 바뀐 곳은 바로 부엌. 도시형 한옥을 지으면서 아궁이와 부뚜막이 점차 사라졌다. 1970년대에는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부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식사하는 곳과 요리하는 곳이 같아졌다. 여성은 부엌에, 남성은 마루에 머물던 관습도 사라졌다. 부엌이 곧 마루가 된 것. 저자는 “가장 열등하게 바라보던 부엌이 가장 귀중한 곳으로 여겨지는 마루가 됐다”며 “1인 가구가 보편화되는 시기에 한국의 가옥양식은 한 번 더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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