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세기 중엽에 이르면서 동아지중해 세계는 본격적으로 평화의 시대, 상업의 시대, 무역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시대에 당나라는 국제화와 개방을 추진해 신라인과 발해인 외에도 중앙아시아인, 페르시아인, 동남아시아인들이 수도인 장안(시안), 양저우, 광저우 등의 대도시에 집단으로 거주했다. 또한 무역을 중요시해서 오아시스 실크로드와 해양 실크로드를 활용한 동서무역이 활발했다. 본국 신라인들과 동아시아 지역에 거주한 고구려·백제 유민 및 신라인으로 구성된 재당(在唐) 신라인, 일본에 사는 재일 신라인 등은 ‘범신라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라시아 물류망에 적극 참여했다. 신라와 일본을 당나라 중심의 유라시아 물류망 속에 편입시키는 일을 범신라인 상인들이 했다. 각 해역과 항로에 익숙한 범신라인들은 남해항로, 동해남부 항로까지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동아지중해 유통망을 확장하고 활성화시켰다.
이처럼 재당 신라인들은 해안가의 거점도시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조직적으로 역할분담을 시켰다. 동시에 장보고의 힘을 빌어 군사력까지 동원, 신라 정부와 국적이 다른 신라인의 민간 상인조직들을 연결시켰다(김성훈 교수). 이른바 인적 네트워크, 물류 네트워크, 항로의 일원화를 성공시켜 ‘범신라인 공동체’를 완성했다. 동아시아 세계는 이들의 도움이 없으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연결될 수 없었다. 특히 일본은 신라와 관계가 악화되면 무역은 물론이고, 견당사를 파견하는 일 조차 어려워서 민간조직인 이들에게 의존했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경제특구론과 점선면 전략’, 후진타오의 ‘역사공정’과 ‘해양강국론’을 거쳐 시진핑의 ‘신중화제국주의’와 ‘일대일로’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정책모델들은 역사에서 찾았다. 위기를 겪는 한국이 만약에 ‘신한민족경제권’과 ‘신해양강국론’을 추진한다면 ‘범신라인 공동체’의 활동과 ‘장보고의 청해진 특구’를 모델로 삼으면 어떨까.
재당 신라인들은 동아시아 해안가의 거점도시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을 시켰다. 동시에 장보고의 힘을 빌려 군사력까지 동원, 신라 정부와 국적이 다른 신라인의 민간 상인조직을 연결시켰다. 이른바 인적 네트워크, 물류 네트워크, 항로의 일원화를 성공시켜 ‘범신라인 공동체’를 완성했다. 놀랍게도 산둥에서 저장까지 이어지는 재당 신라인들의 해안경제 벨트는 현재 중국의 연해개방 지역에 해당하고, 일부는 경제특구 전략에 중요한 거점이다.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