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라는 우주의 중력, 바로 '세계관'

입력 2021-09-09 06:30   수정 2021-09-09 07:14

‘포켓몬GO’ 신드롬이 전 세계를 강타한지도 벌써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체감하기 어렵지만 당시 포켓몬GO의 인기는 ‘광풍’이라는 표현이 아쉬울 정도였다. 희귀 포켓몬을 잡기 위해 한 장소에 수백 명이 운집한 일은 예사였고, 국내 정식 출시 전 유일하게 포켓몬GO를 플레이 할 수 있다고 알려진 강원도 속초시에는 관광객이 폭증했다. 심지어 미국 LA에서는 한 지명 수배자가 포켓몬을 잡으려다 제 발로 경찰서에 들어가 붙잡혔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가상 세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잠시 현실 세계를 분간하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포켓몬GO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가상 세계에 빠져들게 한 것일까? 정답은 바로 포켓몬GO가 ‘현실에서 못 이룬 꿈을 이뤄주는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기준으로도 포켓몬GO는 기술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월등한 게임은 아니었다. 이미 4년 전 ‘인그레스’라는 동일한 콘셉트의 AR 게임이 등장했으며, 포켓몬GO 속의 공간은 현실과 달라 조악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포켓몬GO는 게임기와 만화로 ‘포켓몬스터’를 접하며 누구나 가져봤을, ‘현실에서 포켓몬을 잡고 여행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꿈을 실현시킨 게임이었는데, 사람들은 바로 이 지점에 열광한 것이다.

메타버스를 구축하고 있는 사업자들에게 포켓몬GO의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적 토대를 만들고, 그 위에 사람들이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세계관을 얹어야 진정한 메타버스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첫 단추인 ‘현실 세계의 모사(模寫)’는 이미 많은 기업들의 메타버스 기술과 AI를 통해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다.
AI 통해 실재감 갖춰가는 가상 세계
지난 2년간 전기차 관련 기술로 이벤트를 열어왔던 테슬라는 올해 8월 ‘AI Day’라는 이례적인 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의 주인공은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과 슈퍼컴퓨터였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단초를 엿볼 수 있는 기술도 함께 공개되었다. 그것은 바로, 차량에 부착된 8개의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간을 인식함과 동시에 AI가 이를 실시간 3D 지도로 구현하는 ‘테슬라 비전(Tesla Vision)’이라는 기술이다. 테슬라의 AI를 탑재한 전기차가 전 세계를 누비게 된다면, 테슬라는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메타버스 공간을 가진 사업자가 될 것이다.

MS, 구글, 페이스북 등 AI 역량을 보유한 테크 기업들이 모두 AR 글래스에 뛰어든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AR 글래스가 보급되면, ‘내가 서 있는 곳’으로 국한되었던 데이터 수집 범위가 ‘내 시야에 들어오는 곳’까지 확장되면서 더욱 넓은 공간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수한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테크 기업들이 현실 세계의 방대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마치 살아 숨쉬는 듯한 메타버스를 구축하게 된다면, 그 어떤 사업자보다 빠른 속도로 시장을 선점하게 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상 공간에서 뛰놀게 될 나의 아바타는 어느 정도까지 진화해 있을까? 이는 NVIDIA와 페이스북의 AI 아바타 기술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작년 10월 “이제 메타버스의 시대가 온다”고 선언했던 AI 컴퓨팅 기업 NVIDIA의 젠슨 황 CEO는 2021년 8월, 돌연 깜짝 뉴스 하나를 공개한다. 2021년 4월 열렸던 ‘GTC 2021’에서 그가 진행한 키노트 중 14초 분량은 NVIDIA가 만든 가상의 아바타가 대신 발표했다는 것. 더 놀라운 사실은 4개월이 지나 NVIDIA가 이 소식을 공개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아챈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NVIDIA는 이를 위해 젠슨 황의 외모를 사전에 카메라로 스캔하고 3D로 모델링 한 후, 이를 AI로 학습시켜 젠슨 황과 똑같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이 2019년 공개한 ‘코덱 아바타(Codec Avatar)’라는 기술도 이와 유사하다. 기획 당시부터 VR에서의 소통을 목표로 만들어진 이 AI 아바타 기술은 실제 나와 똑같은 외모, 움직임, 감정 표현이 가능하며 향후에는 페이스북의 NLU(Natural Language Understanding: 자연어 이해) 기술을 통해 언어 능력까지 탑재할 전망이다.
메타버스 시대, 무기는 기술 아닌 세계관
이처럼 현실 세계를 그대로 이식한 가상 공간, 실제 나와 구분이 어려운 수준의 AI 아바타 등 기존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기술들을 마주하다 보면, ‘메타버스는 곧 기술’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메타버스를 구축하기 위한 기초 단계일 뿐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세계관이 있어야만 비로소 새로운 놀이터로 거듭날 수 있다. 2019년까지 고전을 거듭하던 VR 시장이 20년 넘는 시간 동안 탄탄한 세계관을 구축해 온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Half Life: Alyx)’의 출시를 계기로 급성장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현재 메타버스를 준비 중인 테크 기업들도 이를 타산지석 삼아 콘텐츠 및 IP(Intellectual Property) 파워를 확보하기 위한 M&A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세계관에 대한 압도적인 노하우와 자산을 보유한 게임 기업이 주 대상이다. 페이스북은 2년간 무려 6건의 게임사 M&A를 추진했고, MS도 2020년 9월 게임사 제니맥스를 75억달러(한화 약 8.5조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인수했다. 이와 반대로 게임사가 AI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로블록스는 2020년 12월 AI 기반 3D 아바타 스타트업 ‘룸AI’를, ‘포트나이트’를 서비스 중인 ‘에픽게임즈’도 2020년 3월 AI 디지털 휴먼 제작 스타트업 ‘큐빅 모션’을 인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메타버스를 표방하는 그 어떤 사업자도 기술만으로 또는 콘텐츠만으로 성공할 수 없는 구조가 이미 시장에 확산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재미’라는 DNA가 핵심인 콘텐츠 사업자들의 기업 문화를 고려하면 자체 개발보다 M&A를 통한 세계관 확보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바야흐로 스토리텔링을 넘어 ‘스토리리빙(Storyliving)’의 시대다. 스토리만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마블 스튜디오’가 10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수 많은 슈퍼히어로가 살고 있는 유니버스(Universe)를 만든 것도, 레고 블록처럼 조악한 그래픽의 로블록스가 게이머로 하여금 스스로의 세계를 창조하게 하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 언제든 방문해 즐길 수 있는 영속성 있는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서다. 눈 앞으로 다가온 스토리리빙 시대, 당신이 선택한 ‘세계’는 어디인가?

홍원균 KT경제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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