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앙은행 발권력 탐하는 與

입력 2021-09-12 17:06   수정 2021-09-13 09:45

“이러다 발권국이 제일 바빠지겠어요.”

한국은행 임직원들은 기자가 더불어민주당의 경제정책을 놓고 질문할 때면 종종 뼈 있는 농담을 건넨다.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하고 발권력을 남용하려는 일부 여당 정책을 에둘러 꼬집은 것이다.

여당은 지난해부터 한은에 ‘돈풀기’를 적극 주문하고 있다. 지난 8일엔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가 “한은은 현재의 양적완화 정책을 조정하는 한편 소상공인·자영업자 채권을 매입하는 포용적 완화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이 돈을 찍어서 직접 또는 회사채매입기구(SPV)를 통해 자영업자 채권을 사들이라는 내용이다.

여당의 ‘돈풀기’ 압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초 민병덕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극복을 위한 손실보상 및 상생에 관한 특별법안’에서도 나타났다. 정부가 자영업자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재원을 충당하고자 국채를 발행하면, 한은이 돈을 찍어 이 국채를 직접 인수(직매입)하는 것이 이 법안의 골자다.

여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도 지난해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가계소득을 불리는 방안을 제안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6일 페이스북에 “국가의 가계이전소득 지원으로 가계소득을 늘려 가계부채를 줄이고 재원은 금리 0%인 영구채(상환의무 사실상 없음)로 조달하자는 최배근 건국대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적었다. 최 교수는 같은 달 5일 페이스북에 “연 54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전 국민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하자”며 “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해) 0% 금리로 30~50년 만기의 원화표시 국채를 발행하고 이를 한은이 인수하자”고 썼다.

이들 주장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자영업자를 지원하고 정부 재정을 메워주라는 의미다. 한은이 특정 계층을 위해 돈을 찍으면 금융회사의 신용창출을 거쳐 시중 유동성이 그 몇 배로 불어난다. 통화가치가 추락하면서 물가와 환율을 밀어올리는 등 금융시장의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특정 계층의 채권과 국채를 직매입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이유다.

경제학계도 여당 주장에 상당한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자영업자 손실을 메우란 주장은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장기매매를 하라’는 이야기와 같다”고 말했다.

여당이 연일 한은 발권력을 들먹이는 것은 정치적 이유로 해석된다. 현명하고 냉철한 판단을 하는 유권자를 무시하는 처사다. 포퓰리즘의 반작용으로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여당도 인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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