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국인이 비싼 통행료 내는 이유

입력 2021-09-13 17:42   수정 2021-09-14 00:12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일산대교 무료화를 추진해 논란이 많다. 민간투자사업(민자사업)으로 지은 일산대교를 ‘공공재’라며 사업자 운영권 회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건설자금을 댄 국민연금을 ‘악덕 사채업자’라고 비난하고 있다. 많은 도민이 이용하는데 통행료 1200원은 너무 비싸다는 주장이다.
통행료로 저렴한 대중교통 유지
다리의 통행료로 치면 단연 미국이 비싸다. 기자가 뉴욕 맨해튼에 가기 위해 거의 매일 건너다시피 하는 조지워싱턴브리지의 승용차 통행료는 16달러(약 1만8700원)다. 트럭은 44달러를 낸다. 뉴욕과 뉴저지주를 잇는 이 다리의 통행료는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 교통량도 세계 다리 중 가장 많다. 한 해 1억 대 넘게 다닌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통행료 수입은 8억7000만달러에 달했다. 그중 약 5억달러가 이 다리를 운영하는 포트어소리티(port authority NY&NJ) 교통공사의 순이익으로 잡혔다.

엄청난 순이익에도 12.5달러였던 통행료는 작년 1월 더 올랐다. 이 다리를 건너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은 왜 통행료를 묵묵히 내고 있을까. 지역 정치인들은 왜 무료화하자고 주장하지 않을까. 그건 뉴욕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이 다리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뉴욕시는 조지워싱턴브리지 등의 통행료를 일부러 높여 뉴욕으로 유입되는 교통량을 적당한 수준으로 조절한다. 그 대신 벌어들인 돈을 뉴욕의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데 쓴다. 그 덕분에 뉴욕 지하철·버스 승차료는 2.75달러다.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똑같다. 서울의 서너 배에 달하는 뉴욕의 서비스물가를 감안하면 비교적 저렴한 셈이다. 뉴요커들은 이런 시스템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일산대교의 15배에 달하는 통행료를 군말 없이 내는 것이다.

이 지사는 일산대교가 ‘공공재’여서 무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산대교는 공공재의 특성인 비배제성(비용을 내지 않은 사람도 이용 가능해야 한다)과 비경합성(사용자가 늘어도 계속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을 지니지 않는다. 일산대교를 이용하려면 돈을 들여 차량 등 교통수단을 가져야 하고, 무료화로 사용자가 늘면 길이 막혀 혜택이 줄어드는 탓이다.

민자사업은 1994년 정부가 예산 제약으로 짓지 못하는 사회기반시설을 빨리 확충하려는 목적으로 도입했다. 그렇게 서울양양고속도로, 인천공항고속도로, 논산천안고속도로, 서울지하철 9호선, 우면산터널, 인천대교 등이 지어졌다. 교통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거나 특정 지역민 이용에 국한된 곳이 많다.
일산대교 무료화는 포퓰리즘
수혜자가 보편적이지 않아 ‘수익자 부담’ 원칙에 맞춰 짓다 보니 통행료가 높다. 하지만 이용자는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강원도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서울양양고속도로는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일산대교는 교통 수요가 적었던 곳이다. 2009년 운영권을 인수한 국민연금이 순이익을 낸 건 2017년부터다. 그전엔 누적 적자가 557억원에 달했다. 민자사업이 아니었다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지 못해 지금도 건설되지 않았을 수 있다.

이 지사가 일산대교를 무료화하면 이용 주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것이다. 대선 득표에도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이용자를 위해 수천억원의 경기도 세금을 쓰는 전례를 만들게 된다. 무엇보다 수십 년간 국민의 교통 편의를 높여온 민자사업 시스템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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