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복수자들 [임홍택의 새로운 세상 읽기]

입력 2021-09-14 17:54   수정 2021-09-15 00:13


신문과 방송에서는 오늘도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이슈가 끊이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지금의 세상에서 사건 가해자들을 벌하는 것은 국가뿐만이 아니다.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복수자가 등장했다. 그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같은 디지털 기반의 매체에서 활동하지만 현실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번 글에서는 이 같은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복수자들이 왜 등장했고, 왜 앞으로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인지를 알아보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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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그 어느 때보다 학폭(학교폭력) 폭로 이슈로 시끄러운 한 해다. 학폭 이슈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독 올해 학폭 이슈가 연예계와 체육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한 것은 한 쌍둥이 배구선수의 SNS 활동 덕분이었다. 그녀는 “내가 다아아아 터뜨릴꼬얌”이란 대표적 발언 등으로 자신과 불화를 겪은 한 선수를 저격하려 했지만, 오히려 이것이 학창시절 그녀에게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을 자극하는 결과가 돼 역으로 학교폭력과 관련한 자신들의 과거가 밝혀졌다. 이 사건은 결국 2021년 학교폭력 고백 시발점이 돼 학폭 연쇄 폭로로 이어지게 됐고, 대통령의 체육 분야 폭력 근절 지시까지 이어졌다. 이후 관련 제도 개선이 이뤄지면서 뜻밖의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분노하는 누리꾼과 ‘쌍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런데 소위 ‘쌍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이처럼 사회적으로 크나큰 임팩트로 이어지게 만든 숨은 공로자가 있다. 학폭 사건의 당사자인 ‘학폭 피해자’ 혹은 ‘학폭 가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제3자에 해당하지만 일련의 사건에 누구보다 크게 분노한 ‘인터넷의 시민’ 즉, 누리꾼이다. 학폭과 같은 사건에 직접적인 피해 경험이 없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이 사건에 분노를 표시하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많은 누리꾼은 예전처럼 방구석에서 조용히 분노하는 것을 넘어 팀과 연맹에 책임 있는 대처를 요구하고 청와대에 청원을 올렸다. 심지어 일부 배구 팬은 온라인상에서 모금해 트럭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일련의 흐름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건의 직접 대상자가 아니라 분노한 누리꾼들이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의 죄를 물은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자기 일도 아닌 사건에 비판하고 분노한 이유는 이 일을 해결함으로써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꾀함이 아니다. 단지, 지금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가 과거 학폭을 저지르고도 이에 대한 벌을 받지 않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도 없다는 점에 분노한 것이다. 상식선에서 생각하더라도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이며, 이를 그대로 놔둔다는 것은 사회 정의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행위 방식은,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마블(Marvel)의 슈퍼히어로 연합인 ‘어벤져스(Avengers)’의 방식과 비슷하다. 어벤져스는 직역하면 ‘복수자들’이라는 다소 험악한 느낌의 단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평화를 유지하고 정의를 유지하는 것에 국한해 복수를 행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적 논란을 일으킨 자들에게 응징을 가하는 지금의 누리꾼들을 새로운 세상의 ‘디지털 어벤져스(Digital Avengers)’라고 부를 수 있다.

지금의 세상에서 이 새로운 복수자들이 활동하는 사례는 학폭 사건 말고도 무수히 많다.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사건은 하루가 멀다고 터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응징 사례 또한 그에 비례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이슈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행하는 응징 행위 자체가 정의로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복수를 뜻하는 영어단어는 ‘어벤지(avenge)’와 ‘리벤지(revenge)’가 있다. 어벤지는 보통 정의를 실행할 목적으로 하는 처벌이나 보복 등에 사용되고, 리벤지는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보복할 때 사용된다. 문제는 실제 정의 구현에서 둘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나는 정의 구현을 위해 응징 행위에 동참했다고 하지만, 행위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정도가 지나치거나 본질이 달라질 수 있다.
정의와 거리 먼 ‘디지털 리벤져스’ 될 수도
지난 6월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한 ‘OO은행 직원 불륜사건’은 결혼식을 앞둔 예비신부가 직장 팀장과 부적절한 관계였고, 이를 알게 된 예비신랑이 이에 대한 증거자료를 지인들에게 살포한 사건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SNS를 통해 사적 보복한 것이라는 논란에 더해 사건 당사자들의 이름과 휴대폰 번호가 담겨 있는 모바일 청첩장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근무하는 은행의 직원 정보까지 유포된 측면, 그리고 ‘불륜 행위자가 수치심을 느끼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정의 구현 의도가 희석되고 그 자리에 자극적인 남녀의 사생활만이 남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대한민국 성범죄자와 같은 악성 범죄자의 신상공개를 명분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교도소’의 경우, 공익을 위해 사이트를 개설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취하기 위함이었고 신상공개자 또한 자의적인 기준으로 선정해 선의의 피해자가 다수 나왔다는 것이 문제가 돼 폐쇄됐다. 운영자는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새로운 복수자들은 정의로운 ‘디지털 어벤져스’가 아니라 오히려 정의와는 거리가 먼 ‘디지털 리벤져스’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수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렇게 ‘직접 복수를 행하고자 하는 모든 누리꾼’에게 ‘인터넷 자경단’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붙이고, 누군가가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해 괘씸하다고 할지라도 국가가 아닌 존재가 그들에게 응징을 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물론 전문가들의 이 같은 지적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누리꾼들이 지금 행하는 방식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러한 누리꾼들의 응징 행위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인간 사회에서 ‘복수’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복수는 사전적으로 ‘원수를 갚는다’ 혹은 ‘가해자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해를 돌려주는 행위(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의미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우리 인간은 복수(앙갚음)를 통해 부당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가 있다(인과응보)는 것을 증명해 왔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인간 사회에서 복수는 날것 그대로의 정의를 의미한다.

스티븐 파이먼 영국 배스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복수의 심리학》을 통해 우리 인간이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의 답은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복수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복수는 인간의 끈질기고 강력한 욕구 그 자체인 동시에 인간 본능에 숨어 있는 정의 구현의 형태’다. 단지, 인간 사회가 문명화가 이뤄지면서, 인간 개인의 사적 복수 대신 국가가 공권력의 힘으로 복수를 대신해주는 형태가 지속됐다고 지적한다. 개인에 의한 ‘직접 복수’의 자연스러운 형태에서 국가에 의한 ‘간접 복수’의 형태로 변화했다는 의미다.

18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국가의 간접 복수는 개인의 직접 복수 욕망을 성공적으로 대체한 것이었다. 이때까지는 국가로부터 복수가 ‘사적 복수’에 비견할 수 없지만, 충분히 죄를 지은 만큼의 극형의 벌을 받는 ‘인과응보주의적 처벌’ 성격이 강했다. 물론 극형을 가하는 이유는 정의 구현 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치안 활동 자체가 미비해 극형을 통해 범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형사 사법 정의 개혁가들의 노력에 따라 점차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사법 정의의 균형은 인과응보주의적 처벌에서 교화와 갱생과 회복적 사법 정의로 옮겨갔다. 파이먼 교수는 이 같은 현대사회의 특징은 역으로 우리의 복수 본능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총, 균, 쇠》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제시한다. 현대 국가의 사법제도는 국민에게 사적 보복을 금지하고 국가가 형법을 기본으로 개인의 복수를 대신하고 있지만, 그 목적 자체가 인과응보가 아니라 국가의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개인이 원하는 정의 구현 욕망과 개인적인 위로 혹은 보상과 같은 개인적인 이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충분한 원한을 풀지 못한 경우, 법에서 금지하는 사적 복수가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수 욕망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법제도
결국 이를 종합하면, 국가는 제도적인 틀을 통해 인간의 직접 복수를 대체하고 있지만, 그것이 결국 우리의 복수 본능을 거세하지 못했고, 끓어오르는 복수 욕망 또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수 DNA를 갖고 있는 현대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사이다 같은 시원한 개인의 복수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는 방법뿐이다. ‘법으로 안 되니 우리가 직접 해결해 줄게’와 같은 사적 제재 및 복수를 주요 모티브로 삼은 창작물이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금년 방영된 SBS 드라마 ‘모범택시’와 tvN 드라마 ‘빈센조’ 또한 사적 복수가 주된 모티브였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법으로는 금지돼 있는) 사적 복수에 시원함을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는 ‘죄를 지어도 제대로 죗값을 받지 않는 현실’에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1조 제1항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확히 명시돼 있지만, 현실에서 법이 모든 국민에게 공정하게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한국은 중대 범죄에 대한 형량 자체가 낮고, 권력 있고 돈이 많은 사람에게 법이 유리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가령,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경우, 과실이 아니라 고의적인(잠재적) 살인죄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 인식이 여전히 크고, 2018년부터 시행된 ‘윤창호법’의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지만,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대법원 양형 기준에 따라 지금까지 나온 최대 양형은 8년형에 불과하다(물론 윤창호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음주운전 사망사고 대부분이 징역 8개월에서 2년이 선고되고, 이 중 77%가 집행유예였다). 그리고 법원 최종 판결이 이뤄진 이후에도 징역을 살게 된 사람들이 공정한 복역을 하고 있느냐의 문제 또한 남아 있다. 교도소 안에서 모두 평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재소자들은 보통 ‘개털(돈이 없는 자)’과 ‘범털(돈이 있는 자)’로 나뉘는데, 돈이 있는 자는 교도소에서도 잘 다림질된 따뜻한 솜옷을 입고, 사식을 먹을 수 있으며, 편한 독방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2015년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1000회에서 밝혀진 이와 같은 교도소 안에서의 불평등이 지금은 개선됐을까?

“현재 우리 사회가 예전에 비해 투명해지고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사회의 투명성이 강화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 번째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의식이 투명해진다는 말이고, 두 번째는 실제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이 개선되고 있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실제 현실의 개선 속도는 인식의 개선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사법 정의와 복수는 밀접한 동반 관계를 가진다. 이 둘은 너무도 밀접한 관계여서 가끔은 둘 사이를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의 사법 정의라는 문명화의 얼굴 아래에서 여전히 복수가 들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상태에서는 언제든 복수라는 인간의 본능이 드러날 수 있다. 지금 정치권에서 실질적 사형제 부활이 이슈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런 상태라면 사람들은 더욱더 사형제를 포함해 200년 종신형과 같은 극형 주장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교정시설 수용인원이 이미 2013년부터 정원 초과인 상황에서 모든 사람을 엄벌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범죄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가령, 음주운전 처벌 강화도 중요하지만 미국, 호주와 같이 차량에 음주운전방지장치 설치를 의무화해 음주운전을 원천 차단하는 제도적 노력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법과 제도의 개선을 떠나 좀 더 쉽게 디지털에서의 사적 복수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제대로 사과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어설픈 자필 사과문이나 “경기력으로 보답하겠습니다”와 같은 말에 감동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단순한 사과보다 진실된 사죄를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조금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한 교육이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더 이상 “우리는 칼을 들고 욕을 했을 뿐 휘두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억울하다)”와 같은 궁색한 변명을 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 임홍택은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동국대에서 영문학·경영학을 전공했고, KAIST 경영대학에서 정보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입사한 CJ그룹에서 12년간 일했다. CJ인재원 신입사원 입문 교육과 CJ제일제당 소비자팀 VOC(Voice of Customer) 분석 업무,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했다. 빨간색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전국빨간차연합회(전빨련) 회장을 맡고 있으며 외교부 혁신이행 외부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포스퀘어 스토리》(2011년) , 《90년생이 온다》(2018년), 《관종의 조건》(2020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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