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안된다는 투자, 밀어붙인 이유 [나는 90년대생 투자심사역이다]

입력 2021-09-16 15:27   수정 2021-09-16 15:28

[한경잡앤조이=이정준 퓨처플레이 투자심사역] 구글의 인사 책임자가 쓴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에 따르면, 구글은 명문대를 중상위권으로 졸업한 사람보다 주립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직원들의 성과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후자인 학생들의 생산성이 더 높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주혁 코스모스랩의 대표이사가 딱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충남대 학사, GIST 석사, 카이스트 박사까지 약 10년에 걸친 기간 동안 높은 성취를 만들어 온 케이스라 할 수 있다. KAIST 박사과정 시절 그가 발표한 논문들은 저명한 국제 학술지인 Nature Communications, Advanced Materials, Energy and Environmental Science에 게재 및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KAIST에서 ESS용 물 기반의 비발화성 아연 금속 전지를 개발했다는 기사도 많이 나갔고, 2020년 하반기 KAIST E*5에서 우승할 정도로 엄친아 같은 능력을 가진 대표이지만 창업 후 투자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아 특히 기억에 남는다.

코스모스랩은 투자심의위원회에서 찬성과 반대가 반반으로 나눠져 투자가 어려울 수도 있었다. 투자에 반대했던 이들의 이유는 해당 분야가 학계와 산업계에서 여러 경쟁 기술들이 연구되고 있는데, 코스모스랩의 기술이 배터리 업계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며, 기업가치가 적절한지 의문이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다른 투자사들은 팀이 원하는 기업가치를 인정하고 투자를 검토 중이어서 양사 간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다. 결국 이 대표에게 다음 기회에 보자는 메일을 받았지만 이미 창업자와 사랑에 빠져버린 필자로서는 어지간히 당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기업가치를 인정 해주고서라도 투자를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다시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결론은 코스모스랩에 대해 제일 잘 이해하고 있는 필자가 알아서 결정하는 것으로 회의는 마무리됐다. 주니어 투자심사역인 필자가 최종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 배경은 다시 생각해도 신기할 만큼 우연이었는데, 관련 분야 박사를 섭외해 진행한 기술 검증 미팅에 투자팀에서 영향력이 큰 파트너분이 참석한 것이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만큼 매우 공격적인 질문들이 오갔다. 질문에 대한 창업자의 대답은 이 분야를 여러 가지 방면으로 깊게 고민해본 깊이가 담겨져 있었다. 파트너는 그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필자는 당연하게도 “투자가 안 되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보고를 하고 투자를 강행했다. 그리고 이 대표께 투자 의사를 전하는 전화는 마치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하는 느낌이었다.

“코스모스랩이 실패하면 옷 벗겠다는 각오로 일하겠다, 꼭 함께하고 싶다”

아직도 동료들은 필자한테 코스모스랩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냐고 물을 때가 있다. 물론 잘하고 있고 잘될 거라고 믿어 투자를 결심했지만 사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정도로 훌륭한 창업자라면 설령 투자하고 잘 안 돼 내가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다’에 가깝다. 개인적으론 여태껏 봐왔던 팀 중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나에게 가장 신뢰감을 준 곳이다. 이 일을 계기로 또 한 번 느꼈다. 내가 선택한 이 직업은 훌륭한 창업자들을 꾸준히 만날 수 있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는 것을.

이정준 투자심사역은 한성과학고, 서울대를 졸업해 두 번의 창업을 경험했다. 그 경험을 무기로 현재 퓨처플레이 투자심사역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스타트업과 소통하고 있다.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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