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재산업의 ‘1등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식품업계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주요 식품회사는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고, 대형마트 등 거대 유통업체와 동맹하는 전략으로 2, 3등의 반란을 철저히 차단해왔다. 하지만 e커머스라는 신유통이 빠르게 성장하고, 비대면 소비의 일상화로 가정 내 장바구니의 주도권이 분산되면서 소비재 각 영역이 춘추전국시대 수준의 경쟁구도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최근 식품산업은 ‘군웅할거’ 시대다. 반란의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곳은 네이버, 쿠팡 등이 자리잡고 있는 e커머스다. 탄산수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웅진식품이 대표적이다. 웅진식품은 탄산수 ‘빅토리아’를 내놓으면서 과감하게 ‘온라인 온리(Online Only)’를 선언했다.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시장에선 자본을 기반으로 한 대형 식품업체의 영업력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온라인 유통망을 통해서만 판매하면서 거품을 철저하게 제거했다. 광고비와 유통 마진 등을 빼 판매 가격을 다른 제품의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광고 없이도 소비자들 사이에서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이라는 입소문이 나자 올 2분기에는 월평균 1000만 병 넘게 팔려나가기도 했다. 업계에선 온라인 판매량만 놓고 보면 빅토리아가 전체 탄산수 시장의 압도적인 점유율 1위인 롯데칠성음료의 ‘트레비’를 앞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진라면이 신라면과 1위 쟁탈을 벌이게 된 것도 온라인 판매에 일찌감치 눈을 뜬 덕분이다. 오뚜기는 2018년 사업부별로 쪼개져 있던 온라인팀을 독립 사업부로 격상했다. 전통 유통망에 익숙한 ‘고참 선배’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마음껏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한 결정이었다.
식품업체 간 경계가 무너지면서 신상품이 시장의 ‘게임체인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닭고기 전문 기업 하림이 라면 시장에 진출하고, CJ제일제당은 ‘안 하는 것 빼고 다 하는’ 종합식품기업이 됐다. 동원F&B의 독무대였던 상온죽 시장은 2018년 말 CJ제일제당이 ‘비비고죽’을 들고나오면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파우치 형태의 비비고죽 등장 전까지 상온죽 시장은 작은 플라스틱 단지에 담은 용기죽이 대세였다. 용기죽은 별도의 그릇에 담을 필요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긴 살균 과정에서 쌀알과 건더기의 식감이 흐물흐물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CJ제일제당은 2018년 4.3%에 불과하던 상온죽 시장 점유율을 1년 만에 33.1%로 키웠다. 지난해 말에는 동원F&B를 꺾고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수제맥주도 비슷한 사례다. 수입맥주의 대체재를 넘어 국산맥주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편의점 CU에서 판매하는 ‘곰표 밀맥주’는 지난 5월 오비맥주의 카스, 하이트진로의 테라 등을 제치고 전체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수제맥주의 등장으로 가정용 맥주시장이 전환점을 맞이했다”며 “앞으로 시장 점유율 1위 카스의 경쟁자는 하이트도, 테라도 아닌 수제맥주”라고 말했다.
달라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유튜브 콘텐츠는 적은 돈으로 대박을 낼 수 있는 마케팅 플랫폼으로 각광 받고 있다.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는 “BBQ가 네고왕이라는 유튜브 마케팅 콘텐츠에서 900만 명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했다”며 “2, 3등이 저비용으로 입소문을 통해 소비자들을 끌어올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광고업계에선 ‘덕션’(프로덕션의 줄임말)의 창의력이 기존 광고산업을 뒤흔들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박종관/박동휘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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