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신고서 정정, 똑똑한 투자자 설득시키기

입력 2021-09-23 05:50   수정 2021-09-23 09:00



지난 15일, 프롭테크(Prop-tech) 기업 리파인과 럭셔리 핸드백 위탁생산기업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시몬느)이 증권신고서를 정정했다. 리파인은 당초 이달 진행할 예정이던 수요예측과 일반청약을 1개월 가량 연기해 10월에 진행하기로 했다.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도 이달 말 예정된 수요예측을 10월 중순으로 연기했다.

두 기업 모두 공모 예정가격이나 비교기업, 주식 수 등은 변화가 없다. 크래프톤이나 카카오뱅크, SD바이오센서 등 올해 정정 신고를 한 '대어'들처럼 너무 높은 공모 예정가가 원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두 회사가 금융감독원과 합의하에 증권신고서를 자진정정하고 연기를 결정한 이유는 "투자자들에게 회사 정보를 보다 쉽게, 정확하게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상장 기업들이 쏟아지면서 투자자들이 변하고 있다. 아무거나 투자해도 '따상'(시초가가 공모가 2배로 형성 후 상한가)을 가던 올 상반기의 투자자 성향은 하반기 들어 업종별, 종목별 따져보는 '깐깐한 투자자'로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생소한 영역, 이해도가 낮은 분야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졌다.

리파인은 국내 최초로 상장하는 프롭테크 기업이다. 거기다 사업 분야도 생소하다. 리파인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세대출보증 권리조사 영역을 구축하면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금융회사 대상의 매출이다보니 일반인이 잘 알지 못했다. 리파인은 공모가격을 위한 비교기업 선정에서도 애를 먹었다. 증권신고서에도 "국내외에서 사업모델이 일치하거나 유사한 회사가 존재하지 않아 업종 분류 및 재무 상황을 고려해 선정했다"고 기재했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추석 이후 발표할 가계대책 추가 보완책으로 은행 전세대출 심사를 강화하거나 한도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리파인의 매출 중 전세대출 관련 서비스의 비중이 90%에 달할만큼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리파인 관계자는 "과거 전세대출 중단 사태가 여러번 있었지만 당시 회사의 매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서 "이번 대책도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지만, 투자자들에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정부 대책 발표 후로 일정을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는 명품 핸드백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로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명품 핸드백 제조 시장에 진출해 ODM 업체로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왔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압도적인 매출과 입지를 가지고 있다보니 마찬가지로 비교기업을 산정하기 어려웠다. 매출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결국 가방 카테고리 OEM/ODM 상장사 중에서는 비교회사로 분석할 수 있는 기존 상장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 측은 "코로나19 영향이 있기 전인 2019년에는 매출이 1조원 이상이었고, 매출 부진이 있던 2020년에도 6218억원을 달성했다"며 "역사적으로 5% 이하 당기순이익률을 낸 적이 한번도 없을 만큼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의 이번 증권신고서 정정도 투자자에게 이런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 관계자는 “이번 상장 일정 재조정을 통해 오히려 히든 챔피언인 우리 회사가 영위하는 ODM 비즈니스 및 럭셔리 핸드백 시장을 알리는 기회로 삼을 것"이라며 “기업공개 기간 연장에 따라 국내외 우량 투자기관 대상의 IR미팅을 확대해 압도적 럭셔리 핸드백 ODM 역량 및 영속적 성장 모멘텀을 공유하고 응원을 이끌어 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성격의 증권신고서 정정은 올 들어서 증가하고 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은 2021년 1~6월 총 318건의 증권신고서(스팩 제외)에 대해 32건의 정정 요구를 했다. 이를 비율로 집계하면 10.06%다. 2017~2019년에는 4~5%에 불과했는데 지난해 12.8%로 급증했다. 하반기에도 정정이 잇따르고 있다. 7월 7곳, 8월 4곳, 9월 2곳 등이다.

증권업계에서는 금융감독원이 개인 투자자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더 깐깐하게 확인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기존에 상장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의 기업들이 많이 등장하는 만큼 전통 제조업종의 기업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일일이 회사에 궁금증을 문의하지 않아도 증권신고서 만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깐깐한 금감원의 체크를 거치며 '검증된 기업'이라는 꼬리표도 달리게 된다.

다만 이런 정정 요구가 금감원의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모가격의 경우 시장에서 수요예측과 공모 청약 결과를 통해 낮게 보고 있는지, 높게 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기회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크래프톤은 처음 증권신고서를 낼 때 공모가 희망범위가 45만8000~55만7000원이었지만 정정을 통해 40만~49만8000원으로 낮췄다. SD바이오센서는 공모가 범위를 두 번이나 내렸다.

시장에선 이미 기업에 따라 수요예측, 공모 청약에서 엇갈린 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 프롬바이오를 비롯해 식품소재 제조업체 에스앤디, 화장품 쇼핑몰 실리콘투 등 3곳 기업의 공모주 일반청약이 끝났다. 실리콘투에는 증거금만 11조3921억원이 몰리며 1700.65 대 1의 경쟁률을 냈다. 반면 에스앤디와 프롬바이오 등은 공모시장에서 저조한 성과를 보였다. 청약을 받은 에스앤디는 4.2 대 1의 경쟁률로 마감했다. 프롬바이오도 48.23 대 1의 비교적 낮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들은 수요예측부터 기관투자가들의 외면을 받으며 공모가를 희망밴드 미만으로 결정했다. 올 들어 IPO 시장에서 공모가격을 희망가격밴드보다 낮게 확정한 건 이 두 회사뿐이다.

이미 공모주 시장은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 투자자는 투자하고 싶은 기업과 아닌 기업을 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증권신고서 정정이 깐깐해진 투자자들에게 도움은 되지만, 너무 과해져 상장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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