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전국민에 현금 뿌릴 근거 만들어라' 기재부에 지시한 與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1-10-01 09:36   수정 2021-10-01 09:37

"(설명)안해도 됩니다" "더 심한 얘기 하기 전에…"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위원회 결산심사에서 최근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의원이 안도걸 기획재정부2차관에게 쏟아낸 폭언에 가까운 말이다. 재난지원금 '보편지원'의 길을 터는 시정요구사항을 주문하는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요구내용은 "향후 재난지원금 편성시 신속집행 및 소비진작 사업은 보편지원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은 선별지원으로 설계하는 등 제도 개선을 모색하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국회가 마음대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줄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들라는 요구다.

코로나 사태 이래 다섯 번의 재난지원금 예산을 편성하면서 기재부는 일관되게 선별지원을 주장했다. 치솟는 국가채무비율이나 경제적 효율을 감안할 때 취약계층에 두텁게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으로, 상식적인 판단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요구가 관철되면 기재부는 정치권의 '보편지원' 압박을 거부하기 어렵게 된다. "피해 범위. 피해규모, 지원의 시급성,다른 제도와의 정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안 차관이 난색을 표한 이유다.

예산편성권을 가진 기재부 차관의 재고 요청을 맹 의원은 "안된다"며 단칼에 잘랐다. "담당 국장의 설명을 들어달라"는 요청도 "안해도 된다"며 거부했다."(시정요구사항이) 상임위원회를 다 넘어온 건데 뭐가 문제냐" "더 심한 얘기를 하기 전에 이대로 나가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갑질이자 헌법위반 소지마저 다분한 부적절한 행태다. 헌법 제54조는 예산안 편성권을 정부에, 심의ㆍ확정권은 국회에 부여하고 있다. 국가재정에 대한 행정부와 국회간 견제와 균형을 강조한 조항이다. 심의권 뿐인 국회가 기재부에 예산 편성을 강제하는 것은 월권이다.

재정운용은 최소투입으로 최대효과를 내는 게 원칙이다. '보편지원 명문화'는 자칫 나라 곳간을 허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재부가 그렇게 반대해도 오늘부터 지급되는 다섯번째 재난지원금(코로나상생 국민지원금)은 수령자가 90%에 달하는 사실상의 전국민 현금 살포가 되고 말았다.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돼야할 돈을 전국민이 용돈쓰듯 나눠가진 심각한 도덕적 해이다. 머릿수를 앞세운 다수의 소수 착취이기도 하다.

여기에 '보편지원' 근거까지 마련된다면 퍼주기 포퓰리즘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시작될 것이다. OECD는 "경제가 굳건한 회복세를 보일 때까지 취약계층과 기업들에 대한 선별된 정책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고 한국에 조언했다. "고령화가 재정에 압력을 주고 있기 때문에 보편지원보다 선별 지원이 성장유지에 효과적이며 재정 여력 보존에도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 특정 정파에 복종할 의무는 없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 중립성을 보장받는 공직자를 정치인의 수족처럼 부리고 하대하는 행태는 독재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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