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 꿈틀대는 소나무…한국의 풍경을 담다

입력 2021-10-03 17:21   수정 2021-10-04 00:21


‘소나무 화가’로 불리는 김상원(64)은 11년 전부터 대형 탑차에 캔버스를 싣고 전국을 누비고 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차를 세우고 화구(具)를 내린 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필요하면 건설 전문가를 불러 비계(높은 곳에서 작업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구조물)를 설치한 뒤 그 위에 올라간다. 원하는 구도의 풍경을 실제로 보면서 그려야 ‘그릴 맛’이 난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이렇게 현장에서 그려낸 그의 그림에는 자연의 생명력과 생동감이 꿈틀댄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김상원 작가 초대전 ‘한국의 그림’이 오는 4일 개막한다. 소나무를 그린 대작 5점을 비롯해 작가가 전국을 누비며 잡아낸 자연의 풍경을 담은 그림 등 총 25점을 28일까지 선보이는 전시다. 김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울산 근교의 작품 창고에서 직접 작품을 가져왔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거나 전시하기 위해 2010년부터 지금까지 탑차를 몰고 다닌 거리는 25만㎞에 달한다.

“그림 스케치부터 마지막 작가 사인까지 현장에서 모두 끝내요. 100호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데 1주일이 걸리는데, 근처 민박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작업에만 몰두합니다.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작업실에서 이를 참고하며 그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원하는 구도가 안 나와요. 인생이 그렇듯 그림도 구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비계까지 설치해가며 그림을 그리는 것도 구도 때문이에요.”

김 작가가 구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여 년 전. 그전까지는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했다. 재능도 있었다. 대학 4학년이던 1981년 중앙미술대전에 초현실주의 회화와 설치미술을 결합한 작품을 출품해 입선했다. 작품 크기가 규정 규격을 벗어나 실격돼야 했는데도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결과다. 하지만 ‘그리는 재미’가 없었다.

“억지로 튀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요즘 말로는 ‘오글거린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걸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이번 전시 제목도 간단하게 ‘한국의 그림’으로 정했어요. 장르는 서양화지만 그림 양식과 전반적인 느낌은 한국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붙인 제목입니다.”

그림 그리는 재미는 2000년 산을 다니며 자연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되살아났다. ‘촌스럽다’고 매도당할까봐 그리지 못했던 구상화를 막상 다시 그려보니 어린 시절 소풍을 갈 때처럼 즐거웠다고 한다. 울산 바다 바로 앞에 있는 횟집 주차장에서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정신없이 그리다가 무릎까지 물이 차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

2005년부터는 소나무를 그리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김 작가는 “소나무는 장소와 계절마다 다 다르다”며 “아무리 그려도 싫증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특유의 강인한 필법으로 그린 소나무 그림은 각각의 나무가 지닌 고유의 정수를 담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화려한 야생화, 홍시가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기암절벽의 아스라한 풍경 등도 마찬가지다.

김 작가는 “울산 폐공장을 개조해 만든 작품 창고에서 가로 30m에 달하는 초(超)대작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소나무와 바위산, 계곡 등 전형적인 한국 자연경관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내년 가을쯤에는 바다와 강, 절벽과 폭포 등을 담은 똑같은 크기의 그림을 그릴 계획이다. 김 작가는 “최종 목표는 가로 66m짜리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며 “사람들은 촌스러운 소재라고 할지 몰라도 결코 촌스럽지 않은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돈만 있다면 더 크게 그리고 싶다”며 웃는 그의 얼굴이 천진난만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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