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최대 미술관에 드리운 나치의 그림자 [김동욱의 하이컬처]

입력 2021-10-04 12:31   수정 2021-10-04 12:35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쿤스트하우스가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스위스 최대 미술품 전시회장으로 거듭났습니다. 특히 르누아르, 세잔, 고흐, 피카소의 명작을 망라하는 나치 독일에 각종 군수품을 공급했던 군수업자 에밀 뷔를레(Emil Buhrle)의 컬렉션이 전시목록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에 따르면 오는 9일 취리히에 있던 쿤스트하우스가 신축 확장 후 재개장하게 됩니다. 새 건물의 설계는 영국의 유명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맡았으며 총공사비 2억600만스위스프랑(약 2622억원)이 들어간 대공사였습니다. 스위스 내의 예술중심지인 바젤을 따라잡기 위해 취리히시 측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관심은 쿤스트하우스의 핵심 전시품인 '뷔를레 컬렉션'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무기상이었던 뷔를레는 나치 독일과 거래를 트면서 돈방석에 앉았던 인물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1~1944년에만 세금으로 1억 스위스프랑을 냈을 정도입니다.


전시 상황은 미술품 수집가로서 뷔를레에게 큰 기회가 됐습니다. 유명 걸작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대인이 유럽에서의 탈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장품들을 헐값에 내놨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뷔를레는 걸작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했습니다. 모네와 르누아르 등 인상파 걸작들이 핵심 타깃이었습니다. 프랑스를 제외한 국가 중 인상파 대표작을 가장 많이 보유했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그의 컬렉션 중 일부 작품은 '약탈품'으로 판정이 났고, 원소장자와 유대계 미술상인들로부터 반환소송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치 시절 강제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강탈하기도 했던 뷔를레의 군수업체는 6·25전쟁으로 인해 또다시 호황을 맞이해 여전히 자금력에 문제가 없었고 약탈품으로 확인됐던 13점 중 9점을 다시 사들였습니다. 2차 대전 후에는 피카소의 대표작들을 사들이는 데 주력했다고 합니다.


1960년 뷔를레가 사망한 뒤 그의 컬렉션의 5분의 1가량인 180여 점이 개인재단으로 넘겨져 사립미술관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번에 1910년도에 지어졌던 쿤스트하우스를 대대적으로 개편해 새로운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뷔를레의 소장품들도 대형 전시공간에서 일반 대중들을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뷔를레 컬렉션에 일종의 '면죄부'를 부여한 것인데요. 하지만 미술관의 홈페이지에는 '인상파 미술품의 중심지'라는 것만 강조됐을 뿐 '나치', '무기상', '유대인','약탈 예술품' 등의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치와 예술품에 얽힌 어두운 그림자는 아직도 다 걷히지 않은 모습입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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