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닥공' 박성현…"지금이 골프인생 전환점"

입력 2021-10-07 18:19   수정 2021-10-07 23:34


“저는 한국을 좋아해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를 뛰면서도 한국을 그리워하죠. 그래서 이렇게 1년에 한 번이라도 한국 대회를 뛰는 것 자체로 굉장히 행복합니다.”

‘남달라’ 박성현(28)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7일 경기 여주 블루헤런GC(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치고서다. 1년5개월 만에 출전한 국내 대회 첫날 2언더파, 공동 13위의 준수한 성적으로 출발했다.

이번 대회는 박성현에게 중요한 기회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 LPGA투어 파운더스컵이 예정돼 있지만 그는 국내 대회를 선택했다. “오랜 부진에서 올라오고 있는 지금, 분위기를 확 바꿔보고 싶었거든요. 충분히 좋은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박성현은 한국 여자골프의 대표 스타 중 한 명이다. 2016년 KLPGA투어에서 시즌 7승을 거둔 뒤 미국에 진출했다. 이듬해 LPGA투어에서 메이저대회인 US오픈과 캐나다 퍼시픽 오픈을 제패했다. 그해 신인왕, 상금왕, 올해의 선수 등 3관왕을 차지하고 신인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이후 2018년 KPMG 여자 PGA 챔피언십도 우승해 메이저 2승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2년간 부진이 이어졌다. 왼쪽 어깨 부상이 길어지면서 장기인 장타를 시원하게 날리지 못했다. 재활을 위해 투어 데뷔 이후 처음으로 4개월가량 경기를 전면 중단하기도 했다.

“재활은 힘들었지만 제가 골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쉬는 동안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가 골프를 그만둔다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전 역시 골프를 계속 하고 싶더라고요. 다른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중계로 볼 때 그 자리에 있지 못하는 게 속상해서 혼자 울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골프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올 시즌 복귀했지만 예전 기량을 바로 회복하지는 못했다. 올 시즌 박성현은 LPGA투어 15경기에 출전해 10개 대회에서 커트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올초 톱10에 들었던 세계랭킹도 60위 아래로 떨어졌다. 부진이 길어지면서 오랜 꿈이었던 올림픽 출전 티켓도 놓쳤다.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다음 올림픽에는 꼭 출전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박성현은 하반기부터 흐름을 바꿨다. 지난달 20일 끝난 포틀랜드 클래식을 공동 15위로 마무리하며 부활을 알렸다. “투어를 뛰면서 계속 잘할 수는 없어요.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죠. 이번에 안 되는 시간이 좀 길었다고만 생각하고 저 자신을 믿고 꾸준히 연습했어요.”

제2의 전성기를 위한 터닝포인트로 삼은 이 대회 첫날, 박성현은 특유의 공격적인 ‘닥공 플레이’를 펼쳤다. 대회장인 블루헤런GC는 까다로운 코스로 유명하다. 전장이 길고 페어웨이가 좁다. 대부분 코스가 티잉 구역에서 그린을 볼 수 없는 도그레그 형태인 데다 그린 주변에 경사가 가파른 벙커가 배치돼 있다. 길면서도 정확하게 쳐야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 선수가 이 코스에서는 파 세이브를 노리는 플레이를 한다. 2019년 우승자인 고진영의 최종 스코어는 3언더파였다.

박성현은 이날 9번홀(파4)에서 티샷으로 284야드를 날렸다. 두 번째 샷한 공이 홀컵을 맞고 나오며 이글이 될 뻔한 명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영리하면서도 과감한 코스공략이 빛났다. 11번홀(파3)은 이날 극한의 난도로 적잖은 선수들의 타수를 앗아갔다. 티 정면으로 커다란 해저드와 경사가 가파른 벙커 3개가 자리잡고 있는 홀이다. 직선으로 티를 노리기에는 위험 요소가 크다.

직전 홀에서 2m 퍼트를 놓치며 아깝게 보기를 기록한 상황. 그래도 박성현은 위축되지 않고 과감한 티샷으로 공을 해저드 반대편으로 보냈다. 이어진 어프로치샷이 티에서 12m 거리에 멈춰서 위기를 맞았지만 롱 퍼트를 성공시키며 파로 막아냈다.

후반 들어 체력이 다소 떨어진 듯 짧은 버디 퍼트를 여러 개 놓쳤다. 그래도 파세이브를 유지했고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날카로운 세 번째 샷으로 공을 핀 한 뼘 거리에 붙이며 버디로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박성현은 “남은 라운드가 훨씬 더 중요하다”며 “갈수록 피로가 누적될 것 같은데, 무리한 샷보다는 안전하게 공략하자고 캐디와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그래도 공격적이었다’는 평가에 “오늘은 그린이 부드러워서 핀을 공략하기 쉬웠다”며 웃었다.

한국을 사랑하는 박성현이지만 아직은 미국 투어에서 더 우승을 거두는 것이 목표다. 그는 “예전 경기력을 70%가량 회복한 것 같다. 안 풀리는 기간 동안 잃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올라오는 법도 배우고 있다. 믿어주신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박성현의 두 번째 비상은 이제 시작이다.

여주=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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