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가계부채와 이재명의 '기본대출권'

입력 2021-10-21 17:16   수정 2021-10-22 00:10

꽉 막혔던 은행 대출 창구에 다시 생기가 돌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전세자금 대출이 중단되지 않도록 가계대출 총량규제에서 전세대출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다락같이 오른 전세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사람들은 한시름 놓게 됐다.

정부는 그 대신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규제를 더 죄기로 했다. 실수요자는 구제하되 ‘빚투’와 ‘영끌’은 철저히 차단해 집값을 안정시키고 가계부채 리스크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1800조원 가계부채의 경고음과 ‘대출난민’들의 아우성 사이에서 금융당국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당국자들 눈앞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주창한 ‘기본 대출권’이 아른거릴 것이다. 만약 이 후보가 당선되고, 공약이 실행되면 가계부채 억제 노력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때문이다. 기본대출은 이 후보의 ‘3대 기본 시리즈(기본소득·주택·금융)’ 공약 가운데 기본금융에 등장하는 ‘신개념’이다. 대출에도 기본권이 있다는 생소한 논리다. 정부가 보증을 서고 은행들이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00만원까지 저금리로 빌려준다는 게 골자다. 만기 10~20년 동안 마이너스통장처럼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저신용자들에게 기본대출권을 보장함으로써 금융불평등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국민 절반만 기본대출을 받아도 그 규모가 250조원이다. 이 후보는 “가계부채 문제를 고려해 만 19~34세 청년(약 1014만 명)부터 시작하겠다”고 한다. 또 대출이자를 은행 우대금리보다 높게 설정하면 신용 1~2등급자는 대출 유인이 없을 것이고, 실제 이용자는 3등급 이하 청년 750만 명 안팎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경우에도 소요자금은 75조원이다. 이 돈이 기존의 고금리 대출을 갚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높아 가계부채 총량 증가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 후보의 판단이지만, 이런 예상과 달리 늘 빠듯한 저소득층은 일회성 소비로 지출할 가능성이 더 높다. 가계부채 폭증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기본대출은 상환 능력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빌려주는 ‘묻지마 대출’이다. 현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원칙인 ‘상환능력 범위 내 대출’과도 거리가 멀다. 못 갚아도 정부가 책임지는 구조여서 모럴 해저드도 심각할 것이다. 실제로 정부 보증의 저신용자 대출상품 ‘햇살론17’은 출시 2년도 안 돼 대위변제율이 10%를 넘어섰다. 열 명 가운데 한 명꼴로 돈을 갚지 못해 정부가 대신 갚아줬다는 뜻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국정감사에서 기본대출에 대해 “막대한 재원이 들고, 부채를 늘려 상환 부담을 높이는 부작용이 있다”고 꼬집었다. 기본대출이 부실화되면 결국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이럴 바엔 정부가 금융시장에 개입할 게 아니라 재정과 복지 정책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낫다.

기본대출의 더 큰 문제는 금융시스템의 기본과 상식을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금융은 예금자의 돈을 받아 대출하고, 원금과 이자를 잘 회수해 필요한 사람에게 다시 제공하는 게 기본이다. 돈이 돌고 돌아가도록 하는 신용창출이 금융의 본질이다. 금융사는 돈을 잘 갚는 사람(기업)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신용도를 평가해 대출 금리를 차등화하고 부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야 보다 많은 이들이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고신용자는 대출금리가 낮고, 저신용자는 대출금리가 높은 건 시장경제의 상식이다. 정부 역할은 이런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 점검하고, 건전성을 관리·감독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 금융과 복지를 혼동하면 곤란하다.

그런데도 이 후보는 “고소득자는 저리로 돈을 빌릴 수 있지만 서민은 불공정한 금융시스템 때문에 제도금융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 약자를 위한 포용금융·공정금융이란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었지만, ‘공짜로 1000만원 빌려줄 테니…’라는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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