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따라 문학관 순례…오늘은 나도 '문청' [고두현의 문화살롱]

입력 2021-10-29 17:15   수정 2021-10-30 00:08


김유정 소설 ‘봄봄’의 무대인 강원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옴폭한 떡시루 같다 해서 실레(시루의 강원도 방언)로 불리는 곳이다. 이 마을 단풍 빛은 유난히 붉다. 다른 곳보다 서리가 빨리 내리는 강원 산골이어서 색깔이 더 짙다. 은행나무 잎도 소설에 나오는 생강나무꽃처럼 샛노랗다.

이곳의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하는 사람은 발길마다 단풍 물을 적시며 걷는다. 경춘선 김유정역에서 문학촌으로 이어지는 길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김유정 생가와 기념전시관, 김유정이야기집은 작품 속 주인공들과 사진을 찍는 이로 붐빈다. ‘봄봄’과 ‘동백꽃’을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는 영상실도 인기다.

소설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금병산 자락 실레이야기길 또한 명소다. 16개 길에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등 재미있는 이름이 각각 붙어 있다. 지난 24일 김유정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한 문인들도 “김유정 소설의 해학을 잘 살린 길 이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유정문학촌에서는 김유정문학축제와 4대 문학상 시상식 등 굵직한 행사가 연중 이어진다. 소설가 이순원 씨가 촌장을 맡아 내실 있는 기획전과 창작교실 등을 마련한 덕분에 전국 규모의 문화순례지가 됐다.


이곳만큼이나 인기 있는 문학관이 강원 평창군 봉평면에 있는 이효석문학관이다. 여기엔 이효석 작품에 나오는 1930년대 봉평 장터가 재현돼 있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답게 4만여 평의 메밀밭도 인근에 펼쳐져 있다. 작가가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묘사한 밤길 70리의 정취는 이곳에서만 오롯이 맛볼 수 있다.

허생원이 처녀와 사랑을 나누던 물레방앗간은 문학관과 봉평시장 사이에 있다. 그 옆으로 개울물에 빠진 허생원을 동이가 업고 건너며 혈육의 정을 느끼던 흥정천이 흐른다. 장터 부근에서 한 끼로 거뜬한 메밀국수와 무 배추 고기를 넣은 메밀전병, 메밀부침, 메밀묵까지 즐기다 보면 한나절이 금방 간다.

경기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도 가볼 만하다. 이곳은 황순원 소설 ‘소나기’를 주제로 한 마을이자 문학공원이다. 소설 속의 수숫단을 형상화한 원뿔형 조형물에 작가의 친필과 작품연보가 새겨져 있다. 옛날 교실을 재현한 ‘남폿불 영상실’에서 ‘소나기’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문학카페와 사랑방에서도 작품을 음미할 수 있다.

경기 화성시에는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시인 홍사용을 기리는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있다. 지금은 아파트가 즐비한 동탄신도시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오산천을 타고 서해의 배가 이곳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홍사용이 100년 전 창간한 잡지 이름이 ‘백조(白潮)’였으니, 그 배들이 그려낸 하얀 물결이 이곳까지 이어져 오는 듯하다.

이 문학관은 몇 년 전 관장을 맡은 손택수 시인의 열정 덕분에 최근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문학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손 관장은 홍사용이 극단 토월회와 산유화회에서 활동한 극작가였던 점을 감안해 문예지 ‘시와 희곡’을 창간하고, 명맥이 끊겼던 ‘백조’를 복간했다. 노작 홍사용 창작단막극제와 청소년 시낭송공모전까지 열고 있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1층에서부터 산유화극장의 공연 소리가 방문객을 맞는다. 2층 전시실에서는 홍사용 문학에 대한 영상과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시인과 함께 걷는 시숲길, 문학이 함께하는 음악회도 즐길 수 있다. 지난주 찾은 이곳 정원과 마당, 뒤 숲은 방문객의 열기와 단풍 빛으로 한층 붉어 보였다.

이 밖에 경기 광명의 기형도문학관과 안성의 박두진문학관, 조병화문학관도 놓치기 아까운 곳이다. 서울에는 종로구의 윤동주문학관과 영인문학관, 한무숙문학관을 비롯해 도봉구의 김수영문학관, 중구 남산 자락의 문학의집서울 등이 있다. 모두가 가을 정취와 문향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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