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 산지로 뜬 최북단 철원…8년 기다림 끝에 "심봤다"

입력 2021-10-29 17:17   수정 2021-11-08 15:46


지난 28일 강원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 군부대 옆의 한 인삼밭. 막바지 인삼 수확이 한창이었다. 트랙터가 헤집고 지나가면 땅속에 묻혀 있던 수삼이 한가득 올라왔다. 선선한 가을 바람 사이로 신선한 수삼 향이 퍼져나갔다. 흙과 검불 사이에서 수삼을 골라내 포대에 담는 일꾼들의 손이 분주했다. 춥기로 유명한 최전방 철원을 비롯한 강원 지역은 최근 6년근 인삼 주요 산지로 떠올랐다. 기후 변화로 과거 주요 재배지인 충남 금산 등에서 6년근을 키우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인삼 경작 지도가 바뀌고 있다.
6년근 주산지 된 강원 양구 펀치볼
KGC인삼공사의 6년근 주요 계약재배 산지는 강원 홍천(489㏊)이다. 그다음이 강원 횡성(249㏊), 경기 여주(247㏊), 이천(236㏊) 순이다. KGC인삼공사 관계자는 “폭염 등 기후 영향을 오랜 기간 견뎌야 하는 6년근은 주로 강원·경기 지역에서밖에 재배할 수 없게 됐다”며 “과거 주요 산지인 충청도에선 단년근을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00년간 세계 평균 기온은 1.4도, 한국은 이보다 더 높은 1.8도 상승했다. 기온 상승과 함께 인삼 경작지는 북상하고 있다.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충북과 충남의 인삼 재배지 면적은 최근 15년간 각각 38.3%, 35.6% 감소했다. 같은 기간 강원 재배지 면적은 29.2% 증가했다. 6·25전쟁 때 격전지인 강원 양구군 ‘펀치볼’ 지역은 날씨가 서늘해 주요 인삼 재배지가 됐다. 통계청은 금산·경북 영주에서 경기 이천·연천, 강원 홍천·횡성·춘천 등지로 인삼 재배지가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저온성 작물인 인삼은 고온에 취약하다. 20도 안팎에서 가장 잘 자라고, 30도 이상이 되면 성장이 멈춘다. 35도 이상 기온에 닷새가량 노출되면 잎이 마르는 등 피해를 입는다. 농촌진흥청은 2010년 전 국토의 84.1%에 달했던 인삼 재배 가능 지역이 2090년 5.1%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측했다. 강원 일부 지역에서만 인삼을 재배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KGC인삼공사는 기후 변화에 맞서 품종, 해가림 시설 등 다양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2019년 온난화(더위)에 강한 품종인 ‘선명’을 개발해 등록했다. 2년근 기준 엽소율(더위로 잎이 타버려 인삼의 생장이 멈추는 현상)을 기존 14.4%에서 1.9%로 확 낮춘 품종이다.
2년 새 가격 폭락 ‘인삼의 눈물’
인삼은 대표적인 ‘기다림의 작물’이다. 2년간 토지를 다지고, 묘삼(1년근)을 심은 뒤에도 6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수확하기까지 총 8년이 걸린다. 이날 8300㎡(약 2510평) 인삼밭에선 총 250상자(상자당 인삼 무게 30㎏)의 6년근 인삼을 수확했다. 무게로 환산하면 7500㎏. 풍작이다.

인삼 농업인 이주명 씨(40)는 “‘일토이묘(一土二苗·토양이 가장 중요하고 다음으로 모종이 중요하다)’란 말을 마음속에 새기며 토양 관리에 힘을 쏟았다”며 “관행적으로 사용하던 목재 해가림 시설을 철제 파이프를 활용해 바꾸고, 자동관수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 효율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지난달 수확을 앞둔 인삼 농가들이 인삼밭을 갈아엎는 시위를 벌였다. 인삼 가격이 폭락해 키울수록 손해이기 때문이다. 2년 새 수삼 가격은 연간 20%씩 폭락해 반토막났다.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 등 홍삼을 대체하는 건강기능식품이 쏟아져 수요가 점차 줄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인삼 가공식품 유통의 25%를 차지하는 면세점 매출이 코로나19 탓에 급감한 영향도 컸다. 하지만 KGC인삼공사와 계약하고 재배한 이씨는 가격 폭락에 따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날 수확한 인삼은 6년 전 계약한 가격에 팔았다.

최근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재배량이 급감하면 5~8년 뒤 가격 폭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철원=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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