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정주영·이병철 단골집 '예조'마저 문닫았다

입력 2021-10-29 17:34   수정 2021-10-30 00:24


고(故)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단골이었던 서울 필운동 고급 한정식집 ‘예조’가 문을 닫았다. ‘김영란법’ 도입 이후 고급 한정식집을 찾는 수요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타격을 피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강미경 한정식 예조 대표는 29일 “코로나19 여파로 폐업하게 됐다”며 “그간 찾아준 손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는 내용의 광고를 냈다

이날 오후 찾아간 한정식집 예조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건물 앞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정·재계 인사들로 붐비던 과거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예조 근처에서 오랫동안 장사해온 한 상인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예조를 찾는 손님이 크게 줄었다”며 “문을 닫는 날이 하루이틀 늘어나더니 올여름께부터 문을 여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예조가 있던 자리는 한국 고급 한정식집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한정식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고 주정순 씨는 이 자리에서 ‘장원’이라는 이름의 한정식집을 운영했다. 장원은 청진동에 있던 시절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주영 회장, 이병철 회장 등이 자주 찾는 단골집으로 이름을 알렸다. 유력 정치인이 많이 드나들어 ‘밀실정치의 요람’이자 ‘막후정치의 본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정치를 하려면 장원으로 가라”는 말도 있었다.

장원은 한정식업계의 사관학교이기도 했다. ‘늘만나’ ‘수정’ ‘목련’ 등 서울 광화문 인근 고급 한정식집들은 대부분 장원에서 일을 배운 종업원이 나가서 차린 곳이었다. 예조는 장원의 터에서 이 같은 계보를 이어가던 한정식집이다.

재계 관계자는 “예조, 과거엔 장원을 매일 저녁마다 문턱이 닳도록 다녔다”며 “굵직한 한국 현대사가 쓰여진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예조는 공직자에 대한 식사접대 비용을 3만원 이하로 규제한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2만9500원짜리 코스 메뉴를 내놓는 등 살아남기 위해 대중 한정식집으로 변신을 꾀했다. 하지만 식대가 낮아지면서 음식의 질이 떨어지자 오랜 단골 손님마저 발길을 끊었다.

예조 부지와 지하 1층~지상 3층 건물은 서울 한남동에 있는 한 인테리어업체로 넘어갔다. 업계에선 건물을 리모델링해 쇼룸 등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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