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소녀라는 낡은 비유

입력 2021-10-31 17:18   수정 2021-11-01 00:19

말은 그 사회의 변화를 담아내고 전반적인 수준을 드러낸다. 최근 출판계에서는 과거에 고전이라 불린 책들에 담겨 있는 낡은 용어들을 교정해서 펴내는 흐름이 있다. 아무리 고전이라도 언어가 너무 낡아 젊은 세대들에게는 수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바뀔 때 언어가 따라서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가령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등을 묘사하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최근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이런 문제를 느낀 적이 있다. 정원을 가꾸면서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99세의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할머니는 매일 잡초와 씨름하며 곳곳에 자신이 좋아하는 화초를 심고 가꾸며 살아간다. 정원을 가꿔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매일 허리를 굽히고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서는 몇 시간의 긴 노동을 투여해야 정원은 말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99세의 고령이지만 할머니는 이 일을 너무나 훌륭하게 해낸다.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면 정원에 나가지 못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사는 게 너무나 심심해 밥맛을 잃어버릴 정도다. 그저 날이 개어 바깥에 나갈 수 있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어느 봄날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작약이 피었다. 할머니는 정원 한가운데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이 붉은 작약을 감상하고 있었다. 얼굴은 상기되었고 눈빛은 꽃 향과 그 흔들리는 모양에 취한 듯 은은하게 불타고 있었다. 정원이라는 그 작은 세계를 주재하는 자가 기다림 끝에 원하는 것을 얻어낸 눈빛이었다. 방송 카메라도 할머니의 이 눈빛과 표정을 클로즈업하면서 더욱 선명하게 담아냈다. 화면을 보는 나도 깊은 감동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를 확 깨는 내레이션이 나왔다. 작약을 딴 할머니가 꽃을 코에 대고 향을 맡는 모습에서 “할머니는 소녀로 되돌아간 것 같습니다. 수줍음 많은 소녀가 간직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라고 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왜 갑자기 소녀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맥락상 불필요한 군더더기 표현이 아닐까. 왜 할머니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지 않고 소녀라는 구태의연한 비유를 가져왔을까. 노년은 아름다움과는 무관하다는 오랜 고정관념 때문일까, 아니면 노년은 과거를 회상하는 걸로 시간을 소진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작약이 확 시들어버리는 것 같은 표현이었다. 왜냐하면 할머니의 주름살과 살짝 백태가 낀 눈빛, 구부정한 허리와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몸피야말로 그 정원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아름다움은 과거 소녀의 꿈속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정원의 현재, 언제 툭 끊어질지는 모르지만 가늘고도 무성하게 진행되고 있는 그 현재에 있다.

좋은 다큐멘터리에 작은 트집을 잡아본 것이다. 하지만 노년에 이른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심미안을 기르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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