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수 한화손해보험 사장, 빅딜마다 참여…사업 感 익힌 '전략 재무통'

입력 2021-11-16 17:12   수정 2021-11-17 00:45


“앞으로 임원들은 토요일에도 회사로 출근하세요. 비상 사태니 기존에 잡은 일정은 잠시 잊어 주세요.”

지난해 3월 한화손해보험 임원들이 모인 한 회의실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성수 사장이 취임한 직후였다. 회사는 전에 없던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 직전해인 2019년 당기순손실이 610억원에 달했다. 금융감독원은 회사를 경영관리대상으로 지정했다. ‘굴욕’이었다.

위기의 회사를 수렁에서 끌어올리기 위해 등판한 건 강 사장, 한화그룹에서 ‘재무통’으로 통하는 전략가였다. 취임 초기부터 그는 과감한 세대교체와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개선을 택했다. 그리고 채 2년이 되지 않아 눈부신 ‘턴어라운드’가 이뤄졌다. 지난해 한화손보는 884억원의 순이익을 내면서 흑자 전환한 데 이어 올해는 3분기까지 지난해 실적의 두 배에 가까운 1680억원의 이익을 냈다. ‘구원투수’ 지명은 주효했다.
위기마다 함께한 ‘재무통’
강 사장은 1988년 제일증권(현 한화투자증권)을 시작으로 30여 년간 그룹을 떠나지 않은 정통 ‘한화맨’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자금과에서 첫 업무를 시작한 그는 입사 후 대부분을 재무·자금·회계 관련 부서에서 보냈다.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던 한화손보가 그의 손에 맡겨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테다. 강 사장은 “입사 후 그룹 특유의 신용과 의리, 정이 있는 문화가 좋아 애사심이 자연스럽게 생겼다”며 “조직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룹의 굴곡을 강 사장은 늘 함께했다. 가장 잊혀지지 않는 때는 과장급으로 그룹 재무팀에 발령 난 1996년. 그를 맞이한 것은 예상치 못한 외환위기였다. 증시는 연일 폭락하고,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재무팀은 간판을 ‘구조조정본부’로 바꿔 달았다. 밤낮없이 일해야 했고, 사무실의 빈 물통을 교체하는 등 ‘재무팀 막내’로서 궂은 잡일도 도맡았다.

구조조정은 성공적이었다. 한화그룹과 글로벌 화학회사 바스프가 세운 합작사 한화바스프우레탄 지분을 매각한 것을 시작으로 한화기계 베어링 부문, 화학 분야 비주력 부문, 경인에너지 등을 잇따라 매각해 부채 비중을 크게 낮췄다. 한화그룹은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외환위기를 극복한 모범 기업으로 재조명받았다.

강 사장은 이후 한화그룹의 굵직한 회사 인수 과정에도 참여했다.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인수를 비롯해 그룹의 최대 규모 인수합병(M&A)인 삼성과의 ‘빅딜’도 그의 손을 거쳤다. 대규모 인수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직접 딜을 짜기도 했다. 고초 끝에 인수를 포기했지만 ㈜한화 근무 당시에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실무 작업도 담당했다.

어려운 파고를 잇따라 넘으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노하우와 경험이었다. “기업이 잘되려면 결국 재무 리스크와 사업 리스크 사이에서 균형을 이뤄야 하더군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지,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감(感)’을 내재화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기초 체질부터 과감히 바꿔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업무는 그런 그에게도 또 다른 도전이었다. 중대한 사명을 안고 한화손보 사장으로 취임했지만, 내부에선 이미 열패감이 팽배했다. 그룹이 손보 부문을 결국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재무제표를 살펴보니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였다. 기초부터 뜯어고칠 필요가 있었다.

우선 꺼내든 카드는 인력 구조조정이었다. 강 사장은 부임 후 임원 25명 중 20명을 교체했다. 그는 “2019년만 해도 임원 평균 연령이 1963년생이었지만 최근에는 1974년생 임원도 나왔다”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공서열 위주의 보수적 인사보다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승진한 임원들이 기뻐한 것도 잠시였다. 강 사장은 6개월간을 ‘비상경영 체제’로 운영하겠다고 선포했다. 직원들에게 솔선수범하자는 차원에서 강 사장을 포함한 임원들이 이 기간 연봉을 20%씩 자진 삭감했다. 직원들이 쉬는 토요일엔 ‘경영진 세션’을 열었다. 임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위기 극복을 위한 토론을 하고, 보험산업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들으며 미래를 고민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조직 슬림화도 뒤따랐다. 전에 없던 대규모 희망퇴직을 시행해 1년 새 200명가량이 회사를 나갔다. 전체 직원(상담직 제외)의 10%에 달하는 규모로, 업계 5위권 대형사들의 희망퇴직 규모보다 훨씬 컸다.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영업 전략도 바꿨다. 강 사장은 “일시적으로 매출이 줄더라도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서는 손해율을 줄이는 게 더 중요했다”며 “우량 계약 위주로 상품 포트폴리오를 다시 짰다”고 설명했다. 한화손보는 다른 회사들의 보험료 인하 경쟁 속에서도 이례적으로 일부 상품의 보험료를 올렸다. 상품 언더라이팅(인수 심사)도 강화했다. 판매관리비 등 비용 절감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전략은 적중했다. 보험 분야 영업 손실은 2019년 5385억원에 달했으나 지난 3분기에는 1861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전체 영업이익란에 적힌 ‘-863억’이라는 숫자도 이 기간 ‘+2232억’으로 바뀌었다.
“디지털 보험 새 판, 승자 될 것”
기초 체력을 다진 만큼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게 강 사장의 생각이다. 지난 1분기부터 신상품을 출시해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하는 한편 GA(보험 대리점)에서의 점유율도 끌어올리고 있다.

보험업계가 디지털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점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그는 판단하고 있다. 한화손보는 디지털 전문 손해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을 자회사(지분 57%)로 두고 있다. 이 회사는 주행한 만큼 보험료를 내는 디지털 자동차 보험 등을 주력으로 판매 중이다. 강 사장은 “디지털 전환이 금융사의 미래 생존이 걸린 이슈지만 잘만 활용하면 업계 판도를 바꿀 수도 있다고 본다”며 “자체적인 디지털 상품, 영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자회사와의 협업도 늘려 시너지를 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까지 위기를 넘는 회사는 고객에게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주는 곳이겠지요. 당장 업계 1등이 될 순 없어도 끝까지 살아 남는 내실 있는 회사로 키워가겠습니다.”
임원엔 혹독, 직원들은 편안하게…'사내 블라인드'도 직접 만들어
다양한 불만 듣고 즉시 피드백…복장 자율화·해외 연수 지원도
“네 가지 ‘ㅁ’을 잘해야 합니다. 잘 만나고, 잘 말하고, 잘 먹고, 몸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최근 강성수 한화손해보험 사장은 사내 익명게시판 ‘두드림’에 직원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썼다. 이곳은 강 사장 취임 후 마련된 직원 전용 익명 게시판, 즉 사내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앱)다. 실명이 드러나는 사용자는 강 사장이 유일하다.

강 사장의 글에 직원들의 솔직한 마음이 담긴 익명 댓글이 달리는 건 물론, 경영 방침이나 인사·복지에 대한 의견도 거리낌없이 오간다. 강 사장은 “장기적으로 회사가 발전하려면 직원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회사의 변화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을 빠르게 파악하고 곧바로 피드백할 수 있어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임원들에게는 누구보다 혹독한 쇄신을 요구해온 강 사장이지만 직원들에게는 역으로 과거보다 편안하게 업무를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한화그룹 금융 계열사 중 처음으로 출근 복장을 완전 자율화했다. 그동안 보험업계에서 복장을 완전히 자유롭게 한 곳은 메리츠화재 정도였다.

한 한화손보 직원은 “옷을 원하는 대로 입을 수 있으니 출근할 때마다 느끼던 답답한 마음이 한결 줄어들었다”며 “딱딱하던 업무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직원들을 위한 교육과 연수 등 인적 투자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강 사장은 “회사 내 임직원의 역량과 자질은 어느 보험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며 “조직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최적화할 수 있도록 인재 육성에 꾸준히 투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화손보 지원으로 지난해부터 일부 직원은 KAIST 디지털 금융 MBA(경영학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학습 내용을 업무에 적용하고 있다. 올해는 국내 연수 대상자를 더욱 늘리고, 해외 연수 시 회사 지원도 확대하겠다는 게 강 사장의 계획이다. 그는 “취임 이후 코로나19로 현장을 많이 찾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며 “일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어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보답할 것”이라고 했다.

■ 강성수 사장은

△1964년 부산 출생
△1982년 부산 금성고 졸업
△1987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8년 제일증권(현 한화투자증권) 자금과 입사
△2003년 한화건설 재경팀, 금융팀장
△2009년 한화 경영기획실 상무
△2016년 한화 경영기획실 전무, 한화손해보험 재무담당 전무
△2018년 한화 지원부문 재무담당 전무, 부사장
△2020년 1월 한화손보 사업총괄 부사장
△2020년 3월 한화손보 대표이사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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