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적자! 생존할 것이니…

입력 2021-11-22 17:50   수정 2021-11-23 00:20

항간에 우스갯소리로 ‘적자, 생존’이라는 말이 있다.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 아니다. 적는 자(note-keeper)가 생존할 수 있다는 의미로, 특히 윗사람의 지시사항을 잘 적어놔야 함을 풍자한 말이다.

고대 세계 문명의 중심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그리고 중국이었다. 여기에 사람이 많이 살았고 일찍 문명이 발달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들 지역에 문자가 있었고 이를 적어서 후대에 잘 전달했기에 오늘날 문명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그야말로 적자생존인 셈이다.

프랑스의 황금기를 이끈 루이14세는 콜베르가 재상으로 있을 때 주기적으로 수입, 지출과 자산을 기록한 회계장부를 보고받고 이를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아마 수치를 통해 국정을 살폈으리라. 그러나 낭비가 심해진 루이14세는 콜베르가 죽자 진실을 감추고 싶었던지 회계장부 작성을 중단했고 국가 재정은 악화됐다고 한다. 회계(accounting)를 통해 적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accountability)을 지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근대적 회계시스템은 중세 이탈리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무역이 꽃피고 상단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정확한 재산 측정과 투자자 이익 분배를 위해 장부 기록은 필수적이었다. 복잡한 거래 관계를 간결하게 적고,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나쁜 생각을 품기 어려웠으리라. 그런 점에서 회계는 혹시 있을지 모를 인간의 탐욕을 미연에 방지하고 분쟁을 관리하고자 생겨난 것은 아닐까 싶다.

역사적 발전 과정을 거친 이런 투명한 ‘적는 시스템’은 특히 돈을 관리하는 금융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가 돈을 맡겼는지, 누구에게 빌려줬는지 그리고 돈이 어디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기록되고 공개될 수 있어야 한다. 금융회사들이 이런 거래를 투명하게 적고 내·외부에서 정확성 여부를 검증받는 체계를 유지하는 이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파생상품도 지금은 투명하게 적는 시스템을 도입해 관리되고 있다. 거래내역을 거래정보저장소(TR)에 기록하도록 한 것이다. 개인 간 대출 서비스인 P2P 금융도 중앙기록관리 시스템을 통해 거래를 적어놓도록 함으로써 투자자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금융의 생명은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바로 적는 것이다. 얼마 전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핀테크기업의 거래내역 기록관리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여러 대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정한 경쟁 환경에서 핀테크기업이 적자생존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기록관리가 혁신만큼이나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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