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호의 논점과 관점] '세대 갈등'이란 화두

입력 2021-11-23 17:03   수정 2021-11-24 02:06

염상섭(1897~1963) 작품엔 면면히 흐르는 모티브가 하나 있다. 바로 세대 갈등이다. 봉건질서 해체와 근대화 시기를 살아온 작가로서 천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주제다.

논문 ‘염상섭 소설의 세대 갈등 양상’(김정진, 2018)은 작품 속 신·구세대 갈등의 변화상을 따라간다. 1920년대 《제야》 《광분》 등에선 전통질서 강요 앞에 신여성 등 신세대는 한마디 저항조차 못한다. 자유연애의 길이 막히자 자살·가출 등 극단 선택만 남는다. 하지만 《삼대》 《무화과》 등 1930년대 작품으로 넘어오면서 구세대는 점점 더 많은 비판에 직면한다. 1950년대 이후 《미망인》 《화관》 등에선 구세대의 훈계가 신세대로부터 적극적으로 거부당한다. 전쟁 미망인과 결혼하려는 자식의 주장을 이기지 못하는 식이다.
"젊은이 센스 따를 수 있을까"
작가는 한 기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늙은 사람의 생각이 젊은 사람의 생각과 같을 수 있을까? 사고방식이, 보는 눈이, 센스가 젊은 세대, 젊은 사람을 따를 수 있을까?”(동아일보, 1958) 작가의 솔직한 얘기는 세대 갈등이 ‘세대 불평등’ ‘세대 전쟁’으로 비화하는 오늘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람은 늙고 수적 열세에 처한 뒤에야 시대가 바뀐 걸 알고 새로운 세대의 생각과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처음부터 사고가 유연하길 기대하긴 무리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혼돈기다. 세대 사이에 큰 장벽이 버티고 섰다. ‘청년’으로 대변되는 요즘 신세대는 이른바 구세대의 ‘지대(地代, rent) 추구’ 희생양이란 인식이 많다. 4차 산업혁명, 코로나 사태에 저(低)성장, 경제 실정(失政)이 겹쳐 청년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586’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는 기득권을 결코 놓지 않을 태세다. 이들이 점령한 정규직 노조는 자기 자녀의 우선 채용을 요구한다. 주 15시간 미만 초단(超短)시간 근로자 역대 최대(157만 명), 비정규직 800만 명, ‘영끌’ ‘빚투’가 결국은 청년과 연결된 현실인데도 못 본 체한다.

대선을 앞두고 한 표가 아쉬운 정치권에선 ‘청춘 마케팅’ 경쟁이 뜨겁다. 여당은 ‘청년 기본소득 연 200만원’ ‘기본주택 우선 배정’을, 야당도 이에 질세라 ‘연 250만원 청년계좌’ ‘청년원가주택 30만 호 공급’을 말한다. 그러나 재원 조달 방법, 다른 세대와의 균형 등은 여전히 물음표다.
역사 경험 부족? 차이일 뿐
청년들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경쟁, 양질의 제대로 된 일자리, 열린 기회의 문을 요구하는데, 그런 것들을 시스템으로 제공할 고민의 깊이는 보이지 않는다. 탈(脫)이념화와 실용주의로 돌아선 청년들을 “역사적 경험치가 부족하다”고 공박한 시선도 얼마나 달라졌을까 싶다.

물론 깨인 586세대도 있다. 세대마다 경험이 다르니 이해가 안 되더라도 인정해주자는 주장이 그렇다. “6·25를 겪은 부모 세대가 공산주의라면 치를 떨고, 586들은 전두환·노태우는 물론 그들이 만든 정당의 후신(後身)을 경멸한다. 그런데 그 당의 경선 후보로 나선 홍준표 의원을 청년들이 많이 지지했다. 세대 간극은 이런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란 요지의 설명이 와닿는다. 겪어보지 못했을 뿐,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네이버 최고경영자(CEO)에 40대가 기용돼 “80년대생이 이미 왔다”는 마당인데, 가르치려 들려고만 해선 염상섭 소설 속 ‘꼰대’나 다름없을 것이다.

새 세대를 수용하는 너그러움이 이 정도는 돼야 세대 갈등 문제에서 한발이라도 전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바람에 나부끼다 철거될 선거철 현수막 같은 청춘 마케팅으로는 청년이 구제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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