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가 무너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정신건강 문제로 퇴사하는 직원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혁신은 상흔을 남겼다.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로 무기력증을 앓는 등 ‘번아웃 증후군’을 겪는 직원이 늘어났다. 이런 가운데 미국인들의 마음의 병을 고치겠다며 도전장을 내민 한국계 미국인이 있다. 20대 나이에 기업가치 20억달러(약 2조3890억원)에 이르는 헬스케어 회사 스프링헬스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에이프릴 고(29)다.
그 뒤 2년간 회사 일에 매진했다. 하지만 문득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도전 정신이 불타 올랐다. 어렵게 키운 회사를 나온 뒤 예일대에 복학했다.
고 CEO는 룸메이트가 섭식 장애로 고생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병도 문제지만 치료 과정이 더 문제였다.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기 위해 7가지 항우울제를 먹었으며 치료를 위해 최대 21일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 CEO는 해결 방법을 고심하다가 당시 예일대 의대 박사과정에 있던 애덤 채크라우드의 논문을 읽었다. 이후 채크라우드를 찾아가 사업을 논의했고 함께 스프링헬스를 창업했다.
2016년 탄생한 스프링헬스는 총 3억달러를 투자받으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지난 9월에는 기업가치가 20억달러까지 치솟아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반열에 올랐다. 고 CEO에게는 최연소 여성 유니콘 기업 CEO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2018년에는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가 선정한 ‘30대 이하 청년 사업가 30인’에 올랐으며 이듬해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흥미로운 사업가 100인’에도 뽑혔다.
스프링헬스의 모토는 ‘시행착오 줄이기’다. 스프링헬스는 단순히 명상 음악이나 정신 치료법을 제공하는 업체가 아니다. 상담을 통해 이용자의 증상, 병력, 가족력, 사회적 관계 등을 조사한다. 그런 뒤 인공지능(AI) 분석을 통해 이용자의 정신 상태에 맞는 프로그램을 맞춤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명상, 온라인 인지행동 치료, 인간관계 상담, 코칭, 자기주도적인 운동 등의 서비스가 있다. 이용자는 시작부터 끝까지 단계별로 짜인 프로그램을 따라가면 된다.
스프링헬스는 기업 간 거래(B2B)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고 CEO는 미국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 등으로 괴로워하고 심지어 퇴사까지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관리하려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현재 스프링헬스의 이용자는 200만 명에 이른다. 고객사는 갭, 인스타카트, 홀푸드, 테드 등 150곳 정도가 있다.
고 CEO는 “기업들은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1인당 연간 100~150달러를 기꺼이 지불한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정신질환 치료에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4달러의 건강 증진 및 생산성 향상 효과가 있다. 기업으로서도 직원들의 정신건강 관리에 대한 투자는 남는 장사로 볼 수 있다.
고 CEO의 다음 목표는 기업공개(IPO)다. 그는 “코로나19가 남긴 마음의 병은 코로나19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라며 “단기적인 목표는 IPO이고 장기적으로는 정신건강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회사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전망은 밝다. 시장조사업체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미국의 정신건강 시장은 2020년 687억9000만달러 수준에서 2028년 994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프링헬스는 시장이 커짐에 따라 가족 단위 건강관리 프로그램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