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오기 전 스스로를 지켜내는 방법 [슬기씨의 슬기로운 회사생활]

입력 2021-12-01 10:38   수정 2021-12-02 09:15

[한경잡앤조이=김슬기 그렙 교육사업팀장] "번아웃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아마 이 말을 들어 봤다면 어디에서 일하고 있든, 정말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쉽지 않은 하루를 이겨내고 있을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단 몇 분이라도 잠시 쉴 수 있길 바라며, 스타트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번아웃에 대해 나의 경험을 토대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번아웃(Burn-out)은 주로 직장 생활에서 많이 거론되는 하나의 현상이다. 지나친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를 견디고 견디다가 결국 임계점을 한참 넘어버린 뒤 느끼게 되는 무한 무기력증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단순히 피곤하다, 지치다, 하기 싫다는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이제 이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못하겠고, 내가 뭘 더 한다고 해서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으며, 노력할 힘도 의지도 전혀 없어 당장 퇴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신 또는 마음 상태가 되었을 때 보통 ‘번아웃되었다' 고 표현한다. 이 정도의 상태가 되면 몸에도 영향이 와서 컨디션이 엉망이 될 확률이 높다. 실제로 번아웃은 세계 보건기구의 국제 질병/사인분류 11차 개정판에 등록된 하나의 증후군이며, 그저 직장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단어가 아니다.




내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가장 간과했었던 것이 있다면 이 ‘번아웃'에 대한 인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나 자신도 소모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 얘기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성실하게 일하는 것과 과도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으며, 가급적 업무 시간 내에 일을 끝내도록 노력하는 것보다 매일 철야를 불사하더라도 일이 ‘되게 하는 것’ 만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밤에 사무실에서 맥주 한 캔 마시면서 일하는 내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과연 일이 잘 되는 방향이었나 싶다. 그냥 내가 보고 싶은 어떤 결과물의 모양새에 집착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유튜브 창업자 모두 다 차고에서 시작하면서 밤새며 서비스 만들었다는데. 크게 성공한 창업가들도 컴퓨터 밑에서 쪽잠 자면서 서비스 만들고, 정말 미쳐서 일했다는데, 나도 이 정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물론 그렇게 인생을 바쳐 일해보는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 많음은 백 번 인정한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조금 차가운 시각을 가져보자. 창업자라면 모르겠지만 ‘직원’의 입장일 때, 매번 나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게 과연 옳을지 말이다.

스스로 힘들다는 느낌이 지속되는데, 원래 스타트업은 자기희생 정도는 감안하며 일하는 게 맞는 거라며 무시해도 되는 걸까. 나는 개인적으로 아니라고 단언하고 싶다. 당신이 그 자리에 없다면 당신이 만들어내는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일하다 종종 지치는 느낌이야 피할 수 없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수준으로 지쳐버리면 안 된다.

하지만 업무 강도가 높고 역할 분담마저 명확하지 않으며, 시시각각 변화가 잦은 스타트업 조직 환경에서 번아웃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이슈이다. 특히 열정이 넘치고 적극성까지 갖춘 주니어들은 쉽게 그 수렁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무조건 번아웃을 피하려는 생각보다 위험을 스스로 감지하고 진단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게 어떨까 싶다.


요즘 힘들다면, 스스로 진단해보고, 조직에 내 상태를 알리자
일이 많으면 지치는 건 누구나 당연하다. 그런데 번아웃은 단순히 일의 양이 많아서 온다기보다 아래와 같은 상황이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고 반복될 때 발병(?)하는 듯 보인다.

● 이해하기 어려운 의사결정이 반복되고, 일단 따라야 해서 영혼 없이 일해야 할 때
● 핏(fit)이 맞지 않는 동료 또는 그러한 업무를 반복하면서 정신력이 소모될 때
●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확신이 들 때

조직의 문제는 위 세 가지 외에도 여러 개를 열거할 수 있지만 대충 이렇게 3개를 꼽아보자. 너무 최악만 열거하긴 했지만, 이 세 개만 보더라도 사람마다 견디기 어려워하는 항목이 다를 수 있다(1~3 모두가 합쳐진 상황이라면, 이 글을 읽고 정말 깊은 고민을 해보시길 바란다).

조직에서 어떤 역할 또는 위치인지에 따라 각 항목에 노출되는 빈도수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2번이 최악의 상황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2보다 1이 더 괴로울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무엇을 더 잘 견디는가는 이전의 조직 경험이나 개개인 고유의 특성과 결부돼 있어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팀장인지, 팀원인지, 인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지치고 힘든 느낌이 역력하다면 내가 견디기 어려워하는 상황이 무엇인지 진단해보자. 사람 때문인지, 상황 때문인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등등 이것저것 힘든 일이 많겠지만 그중 가장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스스로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 보길 바란다.

고민 끝에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판단이 섰다면 내가 편하게 느끼는 동료에게 털어놓아도 좋다. 하지만 조금 더 용기를 내 팀장 등 리더층에 직접적인 도움을 요청해 보길 바란다. 그들에게 ‘내가 이러이러한 이슈로 번아웃이 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고 얘기해도 괜찮다. 나는 이것을 유난히 못해서 번아웃에 가속도가 붙었는데, 뭔가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고 자기를 부추기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현재 힘든 상황임을 조직 내에 얘기하는 것은 이상하거나 유별난 것이 아니다. 번아웃은 쉬쉬하며 숨기고 혼자서 어떻게든 이겨내 보려고 기를 써야 하는 유형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요즘 유난히 지쳤다는 생각이 들거나, 남들이 ‘번아웃' 이야기를 할 때 귀가 쫑긋 선다면 조금만 용기를 내어 조직에 당신의 힘듦을 공유해보자. 조직은 의외로 당신이 그런 상황에 처해있었음을 잘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고, 심각성을 몰랐을 수 있다. 정신없이 덩치를 키워 나가는 중인 스타트업이라면 조직의 내부를 들여다볼 새가 없어 더더욱 인지가 늦을 수 있다.

만일 특정 사람과 관계된 문제로 인해 번아웃을 느끼는 경우 회사에서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어 그저 문제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 그 이상 이하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내 상태를 진단하고 회사에 알렸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변화의 씨앗이 될 수도 있으니 조금만 용기를 내보자. 내가 힘들게 털어놓은 고민에 대해 회사가 어떤 피드백을 주는지를 경험해보며, 스스로 조직에 대한 다채로운 판단을 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끙끙 앓다가 적당한 피드백이나 방안도 얘기해보지 못하고 혼자 나가떨어지지는 말자.

나는 무한 동력원이 아님을 알기
열심히, 성실히, 최선을 다해서, 매 순간 진심을 다해서 일하는 것 모두 좋다. 그러나 불행히도(아니, 다행인가?) 우리는 무한의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마음의 에너지를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번아웃을 방지하려면 이렇게 나를 움직이는 에너지원들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적당한 휴식을 취해주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한데, 에너지가 0 또는 그 이하가 될 때까지 일해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들이 있다.

남 얘기처럼 썼지만 내가 그랬다. 실제로 일의 양이 많기도 했으나, 에너지를 많이 쓴 만큼 비축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쉬는 동안에도 업무용 메일과 메신저를 수시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가장 빨리 파악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지나친 의식 때문이었다. 당장 답변하지 않아도 되는 요청임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급한 마음에 응대를 해버리는 경우가 잦았다. 쉴 때도 나를 충전하면서 쉬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푼다'는 목적 하에 술을 과하게 마시고 널브러지거나, 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등 나를 계속 소모하기만 했다.

그렇게 계속 나를 쓰고, 쓰고, 쓰다 보니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었다. 마치 부상병과 같은 모습이 되어 조직에서 꾸역꾸역 버티는 나만 남아있었다. 이쯤 되니 나의 번아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동료 및 내가 진행하는 일에도 모두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버티다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겠다 싶었을 때, 넝마처럼 널브러져 퇴사하고 말았다. 몇 년을 피 땀 눈물 바쳐 일해온 조직이었는데, 임계점을 넘어버린 어느 날,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퇴사하고 말았다. 참으로 허무한 일이었다.

열심히 달렸다면, 좀 쉬자. 실제로 두 다리로 뛰어서 숨 찬 것만이 숨이 차는 것이 아니다. 골머리를 써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타인과 협업하면서 마음까지 썼다면 중간중간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반드시 갖도록 하자. 그리고 쉬겠다고 말해도 된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요구해도 괜찮다. 너무 당연한 일이다.

만약 그런 것이 도저히 불가한 상황이라면, 위에 언급했듯 팀 리더와 나의 상태에 대해 심도 있게 얘기를 나눠보자. 얘기를 나누었는데도 도움을 받을 수 없고 해결될 기미가 없다면, 넝마가 되기 전에 스스로 조직에 남을지 떠날지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완전히 번아웃돼서 퇴사하게 되면 휴식을 취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써야 할 수 있다. 심지어 그 다음 회사에 가서도 내게 남아있는 번아웃의 흔적이 계속 작용하며, 새 조직에 적응하는 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최악의 상태가 된 이후 결정하지 말자. 내가 더 잘해보면 되겠지, 내가 더 열심히 해보면 방법이 있겠지…라며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도 지나쳐선 안된다. 당신은 무한 동력원이 아니다.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 스스로를 위한 고민과 판단을 했으면 한다.



하얗게 불태우지 마라
내가 과거에 아주 완전한 번아웃 상태로 퇴사했을 때, 회사라는 껍질만 내게서 벗기면 아주 평온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퇴사를 한 이후에도 의욕은 회복되지 않았다. 무기력증이 일상에까지 침투해서 부유물처럼 둥둥 떠다니는 시기를 보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면 몸에도 영향이 오기 때문에 몸 상태가 바닥을 쳤고 자주 아팠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응급실에 입원한 경험도 처음이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람이 이렇게 망가져버리는구나, 싶은 수준의 별 꼴을 다 보고 나니 컨디션을 다시 정상 궤도로 올려놓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조직에 가서도 번아웃의 영향은 일정 기간 계속돼 전혀 다른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경험했던 상황이 비슷하게 발생하면 겁이 났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또 과거와 유사한 일이 벌어질까 혼자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너무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탓에 다시 채우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번 번아웃 경험을 통해 이런 경험담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또 다른 동료들을 대할 때 조금 더 그 사람의 상태를 세밀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지만 다시는 그런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내 나름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에너지가 채워질 수 있도록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이 잘 안 풀린다고 해서 죽어라 매달리지 않는다. 일부는 관조하고, 답답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판단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독인다.

내가 없으면 내가 만들어내는 가치도 없다. 내가 조직을 소중히 여기고,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면, 스스로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나를 깎아내리면서도 울며 일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만약 나의 과거 경험이 자신과 오버랩 된다면, 용기 내어 조직에 당신의 상황에 대해 얘기해보자. 나는 그런 얘기를 제 때 하지 못해 일을 더 키운 케이스였다. 얘기를 하고 일정 기간 이상 노력해봐도 해결되는 것이 없다면, 모든 게 하얗게 불타올라 당신의 특장점마저 전소되기 전에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읽고 ‘나도 조금 더 노력해 봐야지' 라며 숭고한 마음을 먹고 묵묵히 일을 해내는 당신이 가장 소중하니까.

김슬기 씨는 피아노 전공이지만 컴퓨터를 좋아해 직업을 IT분야로 선택했다. 현재 프로그래머스 서비스를 운영하는 그렙 교육사업팀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코로나19와 관계없이 영원히 원격 근무를 지향하는 그렙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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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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