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가 아닌 진짜 여성…'시대의 위선' 벗겨낸 최초의 누드화

입력 2021-12-02 17:20   수정 2021-12-03 02:22

프랑스 미술비평가 피에르 카반에 따르면 질서, 익숙함, 안정이 위협받을 때 스캔들이 일어난다. 대중은 스캔들이 자신과 다른 시각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예술가를 ‘비정상적’이라고 비난한다는 것이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의 걸작 ‘벌거벗은 마하’는 세계미술사에서 대형 스캔들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세기 거장으로 평가받는 고야가 남긴 유일한 누드화이자 회화 역사상 최초로 실존하는 여성의 나체를 그렸다는 것, 베일에 가려진 신비한 모델의 정체, 스페인 종교재판소에서 음란물 판정을 받은 것 등이 대중의 호기심을 증폭시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누드화가 됐다. 그럼 ‘벌거벗은 마하’를 감상하면서 스캔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나체 여성이 녹색의 긴 벨벳 소파 위에 누워서 유혹하는 눈빛으로 관객을 응시한다. 여성은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두 팔은 머리 뒤로 돌려 팔베게를 한 자세를 취했다. 그런 자세로 인해 여자의 젖가슴이 꽃잎처럼 양옆으로 벌어지고, 가는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육감적인 허벅지가 만나는 S라인의 몸매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 그림은 서양미술사에서 최초로 여성의 체모를 묘사한 누드화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고야는 누드를 이상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회화의 전통과 관습을 파괴하고 동시대 스페인 여성의 나체를 그리는 것으로 사회적 금기를 위반했다. 서양 문화사에서 누드는 보편적이며 영원한 가치를 지닌 표현 수단이자 완벽한 표준이 되는 ‘미의 척도’였다. 아울러 아카데믹한 기법을 훈련하는 미술의 기초로 여겨졌다. 그런 이유에서 누드화의 주인공은 신화 속 여신이나 요정들의 몫이었다.

체모 묘사는 이상적 미의 상징인 누드를 동물적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음란 행위였다. 체모는 동물성, 퇴폐, 불결함, 타락한 성욕을 의미했다. 현실 속 여성 나체를 음란물로 대하는 사회적 거부감을 의식한 화가들은 누드화를 그릴 때 인간적인 흔적을 제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았다. 천이나 손, 다리를 꼰 자세를 통해 체모를 가리거나 없는 듯 매끈하게 붓질했다.

그런 시절에 고야는 후세의 학자들이 “에로틱한 거짓과 위선적인 누드화의 종말” “환상이라는 베일에 가려진 우리의 시선을 벌거벗은 인간 세계로 끌어 내린다”고 극찬한 혁신적 누드화를 창조해 큰 충격을 줬다. 더욱 놀랍게도 ‘벌거벗은 마하’와 한 쌍을 이루는 ‘옷을 입은 마하’를 또 한 점 제작해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두 그림을 비교해보라. 모델, 자세, 실내 정경도 똑같다. 유일한 차이점은 한 여자는 옷을 벗고 다른 한 명은 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옷을 입은 여자도 벌거벗은 여자만큼이나 매혹적이다. 여자의 짙은 화장, 당시 스페인에서 유행한 이국적인 터키풍 의상과 황금 슬리퍼를 착용한 패션도 관능미를 강조한다. 그 시절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한 스페인 정부는 누드화를 엄격하게 검열했다. 그림의 제왕은 단연 종교화였다. 심지어 두 그림을 소유한 스페인 권력자 마누엘 데 고도이 재상도 저택 안 비밀 전시실에 소장품을 숨겨두고 지인들에게만 보여줄 정도로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다.

그런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감히 나체 모델을 섰던 여성은 누구일까? 미술사를 통틀어 이 누드화만큼 모델의 정체를 밝히려는 시도가 많았던 적도 없었다. 그림의 주인공을 둘러싼 다양한 추측과 숱한 논란 끝에 고야의 연인 알바 공작부인, 고도이의 애첩 페피타 튜도, 둘 중 한 여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 그림이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에 정착할 때까지 겪었던 파란만장한 여정도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데 영향을 미쳤다. 스페인 정부는 권력을 빼앗긴 고도이가 프랑스로 망명한 이후 수천 점에 달하는 그의 소장품을 몰수해 보관실에 방치했다. 1813년 ‘벌거벗은 마하’는 외설물 혐의를 받은 다른 그림들과 함께 종교재판소에 압수됐다. 그림이 압류되는 과정에서 고도이의 소장품 목록에 ‘고야, 집시여인’이라고 적혀 있던 원래 제목이 ‘벌거벗은 마하’로 바뀌게 된다. 마하는 스페인어로 성적 매력이 넘치는 멋쟁이 여성을 뜻한다.

고야는 1815년 음란물을 그린 혐의를 받고 법정에 소환됐지만 화가의 재능을 아끼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화형을 면하고 사면됐다. 재판정에서 고야는 모델의 신원에 대해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스페인 정부는 1930년 ‘벌거벗은 마하’ 이미지를 실은 우표를 발행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여성 누드화를 우표로 기념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사비나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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