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2차대전 중 사찰 종 90% 징발해 변기로 썼다 [정영효의 인사이드재팬]

입력 2021-12-06 07:00   수정 2021-12-06 08:57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제가 전쟁 중 일본 사찰의 범종 90%를 징발해 무기제조 뿐 아니라 변기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불교 최대 종파인 조도신슈 혼간지파(?土?宗本願寺派·본산 니시혼간지)가 전국의 종문사원(소속사찰)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범종이 있었던 사찰의 90%가 종을 공출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를 담당한 니타 미쓰코 류코쿠대학 명예교수는 "종의 공출은 개별 향토사 등에 기록돼 왔지만 전국적인 실태가 파악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본 문화청에 따르면 2019년말 일본의 사찰은 약 7만7000곳이다. 혼간지파는 소속 사찰이 약 1만곳에 달하는 최대 종파다. 호쿠리쿠와 주부, 간사이 지역에 사찰이 집중돼 있다.

조사에 응한 약 3800곳 가운데 "종을 징발당했다"는 사찰이 85%였다. "전쟁이 끝나고 종을 돌려받았다"는 사찰은 5%에 불과했다.

일제는 물자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41년 8월 금속류회수령을 공포해 민간의 철과 동, 청동제품 등을 공출했다. 학교의 위인 동상과 가정의 냄비와 솥, 못, 금속단추까지 공출 대상이었다.

녹여서 무기로 쓰기 위한 조치였지만 엉뚱하게 사용된 사례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후 종을 돌려받았다는 사찰 가운데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거나 "정련공장에서 찾아냈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같은 금속이지만 법기(불사에 쓰는 기구) 등은 징발당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55%였다.

한 사찰의 주지는 "고베시의 제철소 부지 구석에 성분조사용으로 직경 2㎝ 정도의 구멍이 뚫린 종들이 무수히 쓰러져 있었다"며 "임시 화장실에는 종들이 절반 정도 지면에 나란히 묻혀 변기로 사용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생명의 존엄성을 알리는 종을 무기나 변기로 사용하는 이 전쟁은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도신슈 혼간지파 각지의 사찰에는 범종을 공출당한 상흔이 아직도 남아있다. 시가현 모리야마시의 가쿠메이지(?明寺)는 300년 이상의 역사가 있는 범종을 지역 사찰 12곳의 종과 함께 공출당했다. 1942년 12월8일 지역 학교에서 공동 공양식을 거쳐 공출됐지만 전후에도 돌려받지 못했다.

미에현 욧카이치의 쇼큐지(正久寺)는 공출된 범종의 대용으로 만든 콘크리트종을 지금도 경내에 보존하고 있다. 실물보다 작은 크기지만 무게는 거의 같은 약 300kg이다. 소리는 내지 못하지만 쓰러지기 쉬운 종루의 무게중심으로 사용하고 있다. 쇼큐지의 주지는 "종을 인명살상에 가담시키는 자체가 불교의 가르침과 모순된다"고 말했다.

혼간지파는 전쟁 중 일제에 협력을 선언했다가 전후 공식 사과한 역사가 있다. 소속사찰들의 46%는 이러한 과거를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일제의 금속류회수령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집요하게 이뤄졌다. 가정의 식기와 제기 같은 그릇은 물론 가마솥과 농기구, 쇠 난간, 교회의 종, 절의 불상까지 징발했다. 특히 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놋그릇과 청동화로가 집중적으로 약탈의 대상이 됐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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