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교육당국 무책임에 고통받는 수험생들

입력 2021-12-13 17:14   수정 2021-12-14 00:09

지난 12일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통속이 됐다’는 의미다. 이 사자성어가 요즘 교육계에도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대한 이의 신청을 처리하면서 소속 간부가 소속된 한국과학교육학회를 문제에 대해 자문을 받는 ‘자문학회’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이 간부는 한국과학교육학회에서 최근까지 부회장을 지냈고, 선임직 이사로 재직 중이다.

이 학회는 A4 한 장짜리 의견서를 통해 “(논란이 된) 문항의 기존 정답을 유지하는 게 타당하다”는 평가원에 유리한 답변을 내놨다. 이후 평가원은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육 과정의 성취 기준을 준거로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이 논란에 연관된 수험생들은 평가원의 ‘불공정’에 분노하고 있다. 생명과학Ⅱ 시험을 치른 한 수험생은 기자에게 “이의 신청 검토 과정이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았다”며 “기만당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수능을 출제하는 기관과 해당 기관을 관리하는 정부는 가장 공정할 것’이란 수험생들의 믿음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다.

수험생들 사이에선 “해외 석학도 인정한 오류인데, 다들 한통속이어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김종일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도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대해 “명백한 오류”라고 지적했고, 유전학계 석학인 조너선 프리처드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A4 여섯 장에 달하는 의견서를 통해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교육당국도 무능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법원이 수능 정답 효력을 정지하는 판결을 내리자 그제야 허둥지둥 대책회의를 하더니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 성적 통지 보류를 결정했다. 대입 일정을 확정한 건 다음날 저녁 늦게가 돼서였다. 교육당국이 자초한 이번 사태로 관련 수험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남은 입시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국내외로 교육당국의 ‘억지’와 자신들의 피해 상황을 알리고 있다.

전체 입시 일정이 밀리면서 ‘2022 대학수학능력시험 정답결정 처분취소’ 소송에 참여한 학생 이외의 수험생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 그런데도 교육부나 평가원에서는 누구 하나 나서서 책임지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대체 학생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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