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휴먼은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넘어갈 수 있을까?

입력 2021-12-16 06:00   수정 2021-12-16 06:22

약 300만 명의 SNS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Lil Miquela)’. 미켈라는 유명 명품 브랜드의 모델이자 동시에 가수, 의류 브랜드를 론칭한 사업가다. 그녀는 이러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2020년 한 해에만 약 13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수많은 팔로워들이 열광하고 기업들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는 릴 미켈라를 현실에서 직접 만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녀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미국 스타트업 브러드(Brud)가 제작한 가상 인간, 즉 ‘버추얼 휴먼(Virtual Human)’이기 때문이다.
사실 디지털 공간에서 활동하는 버추얼 휴먼은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이미 게임이나 영화, 3D 애니메이션 등에서 CG를 활용하여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노력은 계속돼 왔다. 국내 버추얼 휴먼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사이버가수 ‘아담(Adam)’은 처음 등장한 1998년 당시로서는 많은 인력과 노력이 투입되어 제작되었지만, 고도의 기술이 접목되었다기 보다 3차원 애니메이션에 사람의 목소리를 입힌 것에 불과하였다. CG라는 것이 너무 자명했던 아담은 많은 주목을 받으며 등장했지만 캐릭터로서의 쓰임보다는 얼굴 없는 가수의 역할에 그쳤으며 그 후에 등장한 유사한 사이버 가수들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이버가수 아담의 실패 후 20여년이 지나 등장한 버추얼 휴먼은 무엇이 다르기에 주목 받고 있는 것일까?
AI, 빅데이터 기술로 고도화 된 버추얼 휴먼
버추얼 휴먼이 과거와 달리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배경에는 정교화된 CG기술을 비롯하여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빅데이터 분석 기술, 자연어 처리 등 관련 기술의 고도화가 있다. 현재 개발된 버추얼 휴먼들은 얼핏 봐서는 CG라는 것을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과 닮아 있다. 외형뿐만 아니라, AI기반의 학습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람과 대화할수록 데이터가 쌓여 똑똑해지며 진화한다. 일례로 ‘CES 2021(Consumer Electronics Show 2021)’에서 LG전자의 제품을 소개한 버추얼 휴먼 ‘김래아(Reah Keem)’는 모션캡처 작업을 통해 7만 건에 달하는 실제 배우의 표정과 움직임을 추출하고 딥러닝 기술을 이용하여 3D 이미지를 학습시켰다고 한다. 또한 목소리와 언어 역시 4개월 간 자연어 정보에 대한 고도의 학습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글로벌 행사에서 어색함 없이 발표를 진행할 수 있었다.
MZ세대의 생활 속 새로운 인간관계로 부상
버추얼 휴먼이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는 MZ세대가 콘텐츠 소비의 주요 계층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MZ세대는 가상공간인 메타버스(Metaverse) 플랫폼 속 아바타를 통해 게임을 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코로나19로 대면 교류가 제한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메타버스 플랫폼은 원격 수업, 재택 근무 등 일상 생활을 위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MZ세대는 버추얼 휴먼을 더 이상 낯설거나 어색한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흥미를 유발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이제 MZ세대에게 버추얼 휴먼은 디지털 공간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간관계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글로벌 가구 기업 이케아(IKEA)는 일본 도쿄에 매장을 오픈하면서 34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버추얼 휴먼 ‘이마(Imma)’를 모델로 기용했다. 매장 내 쇼룸에 LED 화면을 덧대 구현한 이마는 3일간 그 공간에 거주하며 청소를 하고 요가를 하는 등 일상의 모습을 고객들에게 공개했다. 전시기간 동안 이마의 방을 보기 위해 하루 평균 11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고, 이케아 재팬 유튜브에는 지금까지 꾸준히 방문자가 찾아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에서 개발한 ‘로지(Rozy)’가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올 한해 광고 모델로 1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Bloomberg)는 2025년 버추얼 인플루언서 시장 규모(14조원)가 인간 인플루언서 규모(13조원)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사생활 문제도, 활동에 제약도 없는 버추얼 휴먼
기업 입장에서도 버추얼 휴먼을 모델로 기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강점이 있는데, 우선 버추얼 휴먼 모델들은 사생활 문제에서 자유롭다. 최근 온라인 매체의 발달로 인해 연예인, 셀럽들의 학교 폭력, 각종 범죄 등 데뷔 전이나 유명세를 얻기 전의 사생활 문제가 불거지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기업들은 마케팅 효과를 목적으로 비싼 모델료를 지불하고 이들을 기용하는데, 과거의 불미스러운 사생활 문제들로 인해 오히려 기업과 제품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리스크를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기업들은 버추얼 휴먼을 통해 이러한 리스크를 없앨 수 있으며, 브랜드에 부합하는 이미지로 최적화할 수 있다. 또한 버추얼 휴먼은 컨디션 난조 등의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기업들에게는 활동에 있어 시·공간적 제약이 없는 버추얼 휴먼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버추얼 휴먼으로 발전해야
최근 버추얼 휴먼이 주목 받으면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이 자주 인용되곤 한다.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소개한 이 이론은 로봇이 점점 더 사람의 모습과 흡사해질수록 인간이 로봇에 대해 느끼는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갑자기 강한 거부감, 즉 불쾌한 골짜기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 수준을 지나 인간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면 호감도는 다시 증가한다. 현재의 버추얼 휴먼은 정교한 CG를 통해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뤘지만, 챗봇 수준의 소통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어딘가 어색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진다. 버추얼 휴먼이 소통하는 방식은 상대방의 질문 혹은 대답에 대하여 사전에 입력된 데이터를 빠르게 검색하고 학습한 시나리오에 따라 대답하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응답속도가 빨라지고는 있으나 진정한 의미의 실시간 소통과는 차이가 있다. 버추얼 휴먼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연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진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가장 주목 받는 기술은 ‘초대규모 AI(Hyperscale AI)’이다. 초대규모 AI는 대용량의 연산이 가능한 컴퓨팅 인프라를 기반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하여 단순 명령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닌 종합적 추론이 가능한 수준의 인공지능이다. 기술발전과 더불어 실제 인간과 유사한 버추얼 휴먼의 모습만큼 지능 수준 또한 일반인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차별, 혐오 발언과 개인정보 유출 등의 논란을 일으켜 서비스가 중단된 챗봇 ‘이루다’의 경우 공식적인 나이는 스무 살로 설정되었지만, 학습한 내용에 대해 정확한 가치판단이 어려운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으로 평가된다. 어린아이가 학습과 사회화를 통해 소통 능력을 함양하듯, 버추얼 휴먼 또한 시행착오나 오류 등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기술적 보완과 함께 줄여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지속되어 불쾌한 골짜기를 지나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버추얼 휴먼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여러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될 날을 기대해본다.

KT경제경영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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