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한기철 도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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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12-22 16:16   수정 2021-12-22 16:17

“美 항공모함 국내 입항도 제가 이끌었죠”… 연봉 랭킹 톱 ‘해기사의 꽃’ 도선사
“도선사에게 가장 큰 칭찬은 ‘굿 잡(good job)’입니다. 선박을 안전하게 접·이안 한 뒤 선장에게 ‘굿 잡’이라는 말을 들을 때 성취감은 매우 크죠. ‘굿 잡’이란 말에는 “도선을 잘해 줘서 고맙다”는 뜻이 함축돼 있거든요.(웃음)”

해기사의 꽃으로 불리는 도선사는 배를 타는 모든 이들의 꿈이자 로망이다. 선망의 대상인 만큼 도선사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3등 항해사부터 선장까지 15년 이상 바다 경험을 쌓아야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시험의 난도도 높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도선사를 꿈꾼 한기철 도선사는 해양대를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복무한 뒤 1984년 현대상선을 시작으로 15년간 오대양을 누볐다. 2007년 부산항 도선사가 된 그는 2018년 2월 부산항도선사회장으로 취임했다. 2020년 제25회 바다의 날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연봉과 직업 만족도 순위에서 1~2위를 다투는 직업 도선사, 바다 위의 베테랑 한기철 도선사에게 들어봤다.

도선사(導船士·pilot 혹은 maritime pilot)
국가에서 인정하는 도선사 면허를 취득한 후 항만에서 선박을 원활하게 조종하여 항행 또는 접안 및 이안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가. 대한민국 항만에 입·출항하는 선박의 바닷길을 안내하고 접이안을 돕는 일을 한다.
Q. 도선사는 어떤 직업인가.
“도선사는 항만에 입·출항하는 강제 도선 대상 선박에 승선해 접·이안 작업을 직접 시행하는 직업이다. 선장 출신의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Q. 선박의 접·이안을 선장이 아닌 도선사가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선박을 항내에서 안전하게 운항하고, 항만시설을 보호하며, 항만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강제도선제도를 시행 중이다. 무엇보다 각 항구마다 수심, 암초, 조류 등 항만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전문가가 도선을 해야 안전하게 접·이안 작업을 할 수 있다.”

Q. 도선법이 있는 걸로 안다.
“강제 도선 구역에서는 총 톤수 500t 이상의 외국적 선박, 국제 항해에 취항하는 500t 이상 국적선 선박, 2000t 이상 국내 내항선은 반드시 도선사가 승선해야 한다. 도선 대상 선박은 컨테이너선, 화물선, 대형 크루즈, 어선 및 항공모함, 잠수함 등 군함까지 포함된다.”
국내 260명 도선사 활동… 선장 3년 포함해 15년 이상 경력 쌓아야 시험 자격
Q. 국내 도선사는 몇 명인가.
“약 260명의 도선사가 전국 12개 도선구에 배정돼 근무하고 있다.”

Q. 근무는 어떤 식으로 하나.
“도선구별로 조금씩 다르다. 제가 근무하는 부산항은 56명이 순번에 따라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한다. 주간(06시~18시) 2일 근무 후 야간(18시~06시) 1일 근무한 뒤 다음날 쉰다. 보통 16일 근무 후 10일 휴가를 받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일부 도선구에서는 일주일 근무, 일주일 휴가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Q. 도선사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자격은 무엇인가.
“총 톤수 6000t 이상 선박에 선장으로 3년 이상 승선하면 도선사 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도선 수습생 전형 시험(선박운용, 항로표지, 법규, 영어)과 면접에 합격하면 배정받은 도선구에서 6개월간 200척 이상의 도선 실습을 해야 한다. 실습을 마치고 나서 실기 및 면접 시험을 거쳐 도선사 시험에 합격하면 면허가 주어진다.”

Q. 선장이 되기까지 직급 체계는 어떻게 이뤄져 있나.
“승선을 하게 되면 3등 항해사(2년), 2등 항해사(2~3년), 1등 항해사(5~10년), 선장으로 올라간다. 도선사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 요건을 채우기까지 평균 15년 정도 승선 경력이 필요하다. 2010년 무렵 도선사 평균 합격 연령이 54세였다. 최근 응시 자격이 낮춰져 40대 중반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도선사의 연령대가 다른 직업군에 비해 높은 편이다.”

Q. 연간 몇 명의 도선사가 배출되나.
“예전에는 1년에 10여명씩 뽑았는데 최근에는 매년 약 20명을 뽑는다. 과거에 비하면 선발 인원이 늘어 합격이 쉬워진 편이다.”

Q. 도선사 합격 이후에는 어떤 과정을 거치나.
“시험에 합격한 도선사들은 시험 응시 전 지원한 희망 도선구와 시험 성적에 따라 도선구를 배정받고, 이후 6개월 간 현장 도선 실습을 받게 된다. 선배 도선사를 따라다니면서 기본 도선 교육을 비롯해 항만의 항로표지, 지형지물, 예선 사용법 등 실무를 도제식으로 배운다. 교육을 마치면 현장에 투입되는데, 도선법에 따라 연차별로 다루는 선박의 크기가 달라진다. 도선사 1년차는 3만t 이하, 2년차는 5만t 이하, 3년차는 7만t 이하 선박을 도선할 수 있다.”

Q. 도선할 선박에 도선사가 승선한 후에는 어떤 일을 수행하게 되나.
“승선하면 선장은 도선사에게 그 선박의 제원 등에 관한 ‘pilot card’를 제공한다. 그 카드에는 선박 제작년도, 길이, 엔진 마력 등 제원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선박마다 입출항 시 화물 적재 상태가 다 다르다. 선박의 제원, 특성 및 컨디션을 확인한 후 선장에게 예정 도선 계획을 설명해 주고 선장 및 선교 인원들과 한 팀이 돼 안전한 항해 및 접·이안 작업을 실행하게 된다.”
도선사고 발생하면 수천억~수조원 피해… 임기응변 능력에 체력·정신력·외국어 구사 능력 필수

Q. 도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
“안전한 선박 운용을 위한 항해술, 그리고 도선 요령을 잘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고가 나면 수천억 원, 수조원이 넘는 피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같은 맥락으로 도선사는 책임감도 남달라야 한다. 또한 입·출항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비상 사태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임기응변 능력도 필요하다. 부득이하게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올 초 수에즈 운하에서 도선 중 발생한 사고만 봐도 알 수 있듯 대형 도선사고는 막대한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선 업무 자체가 매우 위험하다. 항해하는 선박에 사다리로 승하선을 하기 때문에 강한 체력과 정신력도 필요한 직업이다. 또 하나 꼽자면 외국 선박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외국어 구사 능력이 필수다.”

Q. 항해 중인 선박에 승하선을 할 때 위험한 적도 있었겠다.
“몇 해 전 도선한 선박에 승선할 때 사다리 줄이 끊어져 해상으로 추락한 적이 있었다. 보트가 선박에 조금만 더 붙었더라면 아마 지금 이 인터뷰도 못했을 것 같다. 매년 전 세계 항만에서 도선사 승하선 시 심각한 부상 및 사망 사고가 다수 발생한다.”

Q. 사고 트라우마가 생기진 않았나.
“배에 오르내릴 땐 아주 예민해진다. 라이프 재킷을 착용하고, 사다리를 당겨보면서 안전 체크를 꼭 해야 한다. 처음 도선사가 됐을 때 일이 너무 위험해 보험에 가입하려고 했더니 안 된다더라. 보험료가 비싸도 상관없으니 생명보험을 들어달라고 수 차례 요청해 겨우 가입한 적이 있다.”

Q. 지금도 도선사는 상해·생명보험 가입이 안 되나.
“몇 년 전 삼성생명에서 도선사를 위한 특별 상해보험이 생겼다. 그래서 도선사들은 필수로 가입하고 있다.”

Q. 도선사는 언제 합격했나.
“2007년 마흔 여덟에 한 차례 재수 끝에 합격해 올해 도선사 14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 해 다른 합격자들은 모두 네 차례 이상 도전 끝에 합격했을 정도로 시험이 쉽지 않았다.”

Q. 도선사를 선택한 계기가 있나.
“1978년 한국해양대에 입학할 때부터 도선사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인천이 고향인데, 부모님 지인 중에 인천항 도선사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도선사라는 직업을 가까이서 접하면서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배를 타는 사람들조차도 도선사라는 직업을 잘 알지 못했다.”
해양대 졸업하고 해군 장교 복무 후 승선 생활… 문재인 대통령 동생과 대학 과 동기

Q. 해양대에서는 어떤 걸 배웠나.
“해양대는 항해과, 기관과 두 개의 학과가 있다. 쉽게 말해 항해과는 항해사, 선장, 기관과는 기관사, 기관장이 되는 해기사 과정을 배우게 된다. 도선사는 선장 출신만 지원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동생인 문재익 씨와 한국해양대 항해과 동기다. 그 분도 현재까지 대형선 선장으로 활약 중이다.”

Q. 해양대 졸업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도선사가 됐나.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해군 장교로 복무 후 1984년 현대상선에 취업해 승선 생활을 시작했다. 3등, 2등, 1등 항해사, 그리고 선장으로 7년 경력을 쌓았다. 마지막 1년은 사표를 내고 고시원에서 1년간 도선사 시험을 준비했다.”

Q. 도선사 시험은 어떤 부분이 힘든가.
“도선사 시험을 준비할 때가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제대로 된 시험 자료가 없었다. 합격한 선배들에게 자료를 받긴 했지만 다시 내 것으로 요약하는 데만 2년 정도 걸렸다. 영어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 때 보던 영어 참고서를 열 번 정도 다시 정독했다. 고등학교 때도 두 번 정도밖에 안 봤으니 정말 열심히 한 것이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장기간 공부해야 하고, 1년에 한 차례 뿐인 시험이라 하선 휴가가 시험 날짜와 맞아야만 시험을 칠 수 있다. 그래서 시험을 준비하다가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서술형인 시험 범위가 방대하고 나이가 들어 하는 공부인지라 암기력이 떨어져 어려움이 많았다.”

Q. 합격 기준은 어떻게 되나.
“시험 성적과 경력 점수(가산점)를 합해 당락이 결정되고 면접 시험을 통과해야 된다. 시험은 평균 60점이 합격선이다. 세 과목에서 각각 서술형 네 문제가 출제되는데 90분 안에 A4 용지 20페이지에 답을 써야 한다. 그때 고생한 기억이 너무나 선명해서 당시 공부한 자료를 파일에 담아 도선사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다.”

Q. 시험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 같다.
“실제로 포기했었다. 1등 항해사를 할 때였는데, 15년 이상 배를 타야 시험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목표가 너무나 멀게 느껴지더라. 고민하던 와중에 아버지께서 육상으로 내려와 사업을 도우라고 하셨다. 갓 서른이 되던 무렵 배에서 내려 아버지 사업을 도왔다. 하지만 아버지 밑에서 영업을 하고, 공공기관을 다녀보면서 사업이 적성에 안 맞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 무렵 도선사를 두 배 이상 늘려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 다시 배에 올랐다.”

Q. 도선사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가장 성취감이 컸던 일을 꼽으라면 2013년 미 항공모함 니미츠호의 입항 도선을 들고 싶다. 지회장님으로부터 도선을 한번 맡아보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기대감도 있었지만 걱정이 앞서더라. 5조원을 들여 만든 거대한 항공모함을 직접 도선할 기회가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겠다 싶어 하겠다고 했다. 이후 항공모함 레이건호도 도선했는데, 도선사로서 큰 영광이라 생각한다. 최근에는 항공모함이 4년째 한국에 기항하지 않고 있다.”
연봉 랭킹 1~2위 다투는 직업… 만족도 높고 근무 여건 좋지만 사고 위험도

Q. 도선사는 연봉 랭킹 상위에 꾸준히 오르는 직업이다. 직업적 자부심도 클 것 같다.
“도선사가 연봉도 높은 편이지만 만족도에서도 굉장히 높은 순위를 기록한다. 도선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크고 만족도도 높다. 젊은 시절 육상과 단절돼 가족과 떨어진 힘든 선상 생활을 거치며 선장으로 오랜 경력을 쌓아야 하고, 천문학적인 부가가치의 선박을 도선하며 승하선 시 위험을 동반하는 전문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그 정도 대우는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직업적으로 장단점을 꼽자면.
“우선 장기 해상 승선 근무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지내며 육상 근무를 할 수 있고 선장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직장인이나 사업가들은 휴일에도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도선사는 선박에서 안전하게 도선을 마치면 임무가 끝나고 비교적 긴 휴가를 즐길 수 있다. 정년도 68세로 긴 편이다. 힘든 점은 컨테이너선이 점차 초대형화(길이 400m·2만3000teu)하고 있고, 도선 중 예기치 못한 돌풍 등 기상 악화와 급작스런 선박 고장 등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항상 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Q. 도선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도선사가 되기까지 힘든 승선 생활을 해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지만 노력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는 직업이라고 자부한다. 후배들이 꿈을 갖고 해기사의 꽃인 도선사에 도전해 보기를 추천한다.”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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