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였더라? 좋아했던 배우의 이름이 금방 떠오르지 않고 입가에 맴돈다. 조금 전 쓰던 휴대폰을 찾아 집안 곳곳을 맴돈다. 지난 주말 친구들 모임에 참석한 이들과 먹었던 음식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나 나이가 들며 자연스레 겪는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이대로 치매로 접어들까 걱정이 된다.의사이자 뇌 과학자인 필자에게 ‘기억력 감퇴’는 단골 대화 주제다.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느냐? 거꾸로 돌릴 수는 없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 이렇게 답한다.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이 중요하네. 뇌를 많이 사용하고,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게. 금연은 기본이네.”
운동과 뇌 건강의 상관관계는 잘 알려져 있다. 나이가 들면 뇌의 크기가 줄어든다. 이때 꾸준한 운동은 뇌의 축소를 늦춰 기억력 감퇴를 막고 치매 가능성을 줄여준다. 이는 동물 실험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유산소 운동이 기억 생성에 관여하는 뇌의 해마에 염증을 없애고, 신경세포 생성과 시냅스 가소성을 돕는 것으로 밝혀졌다. 뇌의 염증이 신경세포 퇴화를 촉진해 치매를 유도한다는 이론도 이제 정설로 자리 잡았다.

뇌의 단면을 해부학적으로 관찰하면 회백색 부분(회백질)과 백색 부분(백질)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바깥쪽 피질은 회백질이다. 주로 신경세포의 몸체가 모여 있다. 안쪽 피질은 두 가지 색이 일정한 패턴을 이루며 분포한다. 백질은 수초(myelin)로 감싸진 액손(axon)들이 다발을 형성한 곳이다.
백질의 감소 또는 손상은 인지기능 저하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치매 환자는 물론 건강한 노인에게도 인지기능 저하 과정에 백질의 저하가 수반된다. 60대 이상 건강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이를 보여준다. 노인들에게서는 6개월의 짧은 기간에도 노화에 따른 변화(인지 기능 및 백질 저하)가 나타났다. 반면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한 노인들은 오히려 백질이 강화되고 기억력도 증진됐다. 노화에 따른 백질의 저하를 인위적으로 막을 뿐 아니라 되돌릴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다.
동물 실험에서도 열심히 운동을 한 생쥐는 그렇지 않은 생쥐보다 학습능력이 우수하고 뇌 염증 반응이 줄어들었다. 운동하는 생쥐의 혈장을 분석해보니 여러 단백질의 양이 변화했다. 그중 혈관 내피세포에 작운동하는 생쥐의 혈장을 분석해보니 여러 단백질의 양이 변화하였다. 그중 혈관 내피세포에 작용하여 염증을 억제하는 ‘클러스트린’이 많이 생성되었다. 이 생쥐의 클러스트린을 운동 부족 생쥐에게 주사하였더니 흥미롭게도 학습능력 상승과 뇌 염증 감소가 관찰되었다. 치매 모델 생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대상 실험에서도 6개월간 꾸준히 운동하면 클러스트린 양이 증가했다. 건강검진 때 의사들이 늘 하는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권유가 입버릇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운동이 뇌 기능을 증진시키는 다양한 기전은 앞으로 더 밝혀질 것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영국 사상가 존 로크의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열심히 운동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신희섭 IBS 명예연구위원·(주)에스엘바이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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