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적법절차 모르쇠'로 사찰 비판 뭉개는 공수처

입력 2021-12-23 17:26   수정 2021-12-24 00:13

‘통신자료 제공 현황. 요청기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눈을 의심했다. 공수처의 ‘기자 사찰 논란’이 불거진 뒤 한국경제신문 법조팀 기자들 사이에선 “우리도 털린 거 아니야”라는 얘기가 나왔다. 혹시 모르니 통신조회를 해보기로 했지만, ‘설마 나까지 뒤졌겠나’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런데 혹시나가 역시나가 됐다. 확인해본 결과 지난 8월 6일 공수처가 기자의 통신자료도 들춰본 것으로 드러났다.

공수처의 ‘기자·야당 의원 사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하루가 멀다 하고 피해자가 추가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상자만 해도 110여 명에 달한다. 기자가 그중 한 명이 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통신조회의 목적은 수사 대상자 통화 내역에 나오는 전화번호의 이용자 이름, 주민등록정보 등 개인정보를 통해 통화 상대방이 실제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문제는 기자가 8월까지 공수처와 관련된 기사를 쓴 사실이 없다는 점이다. 공수처나 검찰이 아니라 법원을 출입하고 있으니 김웅 국민의힘 의원, 손준성 검사, 이성윤 서울고검장 등 공수처 수사 대상자와 통화는 물론 문자메시지도 나눠본 적이 없다. ‘나도 모르는 새 통신조회의 대상이 됐다’는 분노보다 대체 왜 대상이 된 것인지 의아함이 앞선다.

공수처는 “수사 경위를 밝히라”는 조회 대상자들의 요구에 “적법한 수사 활동”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누가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이토록 많은 사람을 조회했는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몇몇 국민의힘 의원이 23일 항의차 공수처장을 방문했으나, 이 자리에서도 김진욱 처장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공수처의 통신조회는 기자, 국회의원은 물론 그들의 가족, 지인 등 공수처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대상으로 했다. 이쯤 되면 대체 ‘사찰’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공수처는 관련법상 수사 대상과 범위가 ‘고위공직자’로 정해져 있는 기관이다. 이들을 수사하기 위해 기자의 통신 내역까지 필요한 상황이라면, 스스로 부족한 수사 역량을 인정하는 꼴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고위공직자를 수사하기 위해 일반인까지 뒤지는 방식은 출범 당시 내세웠던 ‘인권친화적’ 수사와도 거리가 멀다.

공수처는 출범 이후 줄곧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시달려왔다. 그때마다 “신생 기관이니 좀 더 지켜보자”는 동정론에 기대 비판 여론을 헤쳐왔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방식이 통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그런 식으로는 이미 댕겨진 공수처 폐지론의 불씨를 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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