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로 암 치료…큰 장 서는 '마이크로바이옴'

입력 2021-12-24 17:17   수정 2021-12-31 17:44

“장(腸)내 미생물로 암을 고친다.”

달에 사람도 보내는 인류가 아직 이기지 못한 암을 고작 미생물로 고친다니, 황당무계한 소리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 배경과 원리를 잘 이해하면 얼토당토않은 얘기가 아닙니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가 꽂혀 있는 ‘핫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입니다.

우리 몸 속에는 100조 개 넘는 미생물이 산다고 합니다. 무게로 치면 1~3㎏이라고 하니 엄청난 양입니다. 바로 이 미생물(microbe)과 생태계(biome)의 합성어가 마이크로바이옴입니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조슈아 레더버그 컬럼비아대 교수와 알렉사 매크레이 하버드의대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인체에 존재해 우리 몸을 공유하며 살지만 건강이나 질병의 원인으로 간과돼 온 모든 미생물의 총합”이라고 정의했죠. 빌 게이츠가 면역항암제, 치매 치료제 등과 함께 세상을 바꿀 세 가지로 꼽은 게 마이크로바이옴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치료제로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나온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제프리 고든 워싱턴대 교수가 2006년 “미생물과 건강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입니다. 고든 교수가 든 예가 비만입니다. 비만인 쌍둥이와 마른 쌍둥이의 분변을 각각 무균 쥐에 넣어보니 비만인 쌍둥이 분변이 들어간 쥐에서 지방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죠.

실제 비만인 사람의 장내 미생물은 지방과 단백질의 장내 투과를 방해하고 염증 유발 성분을 흡수해 체내 호르몬 신호체계를 엉망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비만을 일으키는 것이죠. 2013년 네덜란드에서는 장염을 치료하기 위해 건강한 사람의 분변 속 미생물을 환자에게 이식했더니 100% 가까이 완치됐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발상은 4~5년 전부터 뇌 질환 치료제, 항암제 개발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바이오벤처인 지놈앤컴퍼니가 개발 중인 면역항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후보물질 ‘GEN-001’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GEN-001은 건강한 사람의 장에서 추출한 ‘락토코커스 락티스’라는 단일 균주를 주성분으로 합니다. 이 물질은 암 치료 효과가 좋은 환자군의 대장에서 높은 비중으로 발견된다고 합니다. 알약 형태의 이 치료제를 먹으면 대장에서 다양한 미생물을 분비시키며 암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가 활성화돼 암이 치료되는 원리입니다. 지놈앤컴퍼니 외에 고바이오랩과 최근 CJ그룹에 인수된 천랩이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파킨슨병이나 자폐증, 루게릭병 치료에 활용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은 뇌세포 사이에 신경전달을 돕는 단백질인 알파 시누클레인에 이상이 생겨 주로 발병합니다. 최근 이런 현상이 장내 미생물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바이오 기업 세레스테라퓨틱스는 장염의 일종인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 치료제로 임상 3상까지 마쳤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허가가 나면 세레스가 본격적인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을 여는 것이죠. 시장조사기관인 프로스트앤드설리번은 의약품뿐 아니라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 전체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이 2019년 811억달러(약 90조원)에서 2023년 1086억달러(약 130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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