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국내 대표 겨울과일 자리를 지켜온 제주 감귤의 경작지형이 크게 바뀌고 있다. 박스째 감귤을 사다놓고 시시때때로 까먹는 모습이 흔한 일상 풍경이었지만 고당도 선호 현상과 수익성 악화, 재배 농가의 고령화 등 복합적 요인으로 제주 감귤이 겨울과일 1위 자리를 내주고 퇴조하는 분위기다. 그 틈새를 노린 딸기 키위 등이 겨울과일의 새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한때 제주 전체 면적(18만5000㏊)의 7분의 1을 차지했던 제주 감귤 재배 규모도 30년 전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24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감귤 재배면적은 1만9998㏊로 30여 년 만에 2만㏊를 밑돌 전망이다. 감귤 재배면적이 2만㏊ 아래로 떨어진 것은 1만9414㏊를 기록한 1990년 이후 31년 만이다. 최대 면적을 자랑했던 2000년의 2만5796㏊와 비교하면 올해 재배면적이 22.5%나 줄어들었다. 내년 감귤 재배면적은 1만9842㏊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농가의 폐원과 만감류(晩柑類) 전환 등으로 재배면적이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천혜향 레드향 한라봉 등 오렌지와 밀감의 혼합종인 만감류 면적이 소폭 증가하고 있지만 대표 겨울과일이던 온주(溫州)감귤 감소폭이 이를 뛰어넘고 있어 재배면적 축소 속도가 가파른 상황이다. 온주감귤 재배면적은 올해 1만5959㏊로 1만6000㏊를 밑돌았고 내년엔 1만5791㏊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온주감귤 생산량은 지난해 51만5800t에서 8.7% 감소한 47만1000t이다. 올겨울 출하량 또한 전년 대비 약 1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마트 관계자는 “딸기는 킹스베리, 만년설 딸기 등 다양한 품종이 계속 출시되며 젊은 층의 인기를 끌고 있지만 감귤은 품종 개량이 더디다”며 “감귤 중에서도 당도가 10브릭스에 그치는 온주감귤은 고당도 과일 선호 현상이 심화되면서 12~13브릭스의 만감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로 수익성이 나빠지자 일선 농가들도 겨울작물을 대체작물로 빠르게 교체하고 있다. 온주감귤(노지재배 기준)의 ㎏당 가격은 약 1500원 선으로 레드향 5000원, 천혜향 4500원, 한라봉 3500원 등에 비해 크게 낮다. 한 대형마트 과일 바이어는 “통계상으론 3배 차이지만 수확 가능한 양 등 실제 수익성을 따지면 만감류 수익성이 거의 10배는 더 높다”고 전했다.
과일업계 관계자는 “수익성이 낮은 감귤에 비해 제스프리는 고가에 전량 매수를 보장한다”며 “농가로서는 안정적으로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2011년 258㏊였던 제주도 내 전체 키위 재배면적은 작년 328㏊로 증가했다. 2015년만 해도 재배되지 않던 망고와 블루베리도 작년엔 재배면적이 각각 38㏊, 52㏊로 늘었다.
상황이 이렇자 제주도에선 아예 온주감귤 농장의 폐원과 작물 전환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수입 과일과 대체 겨울과일이 다양해지며 더 이상 품질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제주도 농업계 관계자는 “도에서도 온주감귤은 생산하면 팔리는 시대가 지났다는 인식이 커 정책적으로 만감류나 대체작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며 “온주감귤 농가가 고령화되면서 옛 품종과 재배 농법을 고수한 것도 경쟁력이 떨어진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신규 식재 후 정상적인 과일 생산까지 4~5년이 걸리는 특성도 감귤 퇴장 속도를 빠르게 하고 있다. 젊은 농가가 온주감귤 신규 재배를 꺼리게 된 것이다. 소비 시장에서도 겨울철 제주 감귤 인기 하락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홈베이킹 등 활용도가 높은 딸기, 영양이 풍부한 키위, 다채로운 수입 과일 등으로 겨울과일이 다변화되고 있다”며 “시큼한 온주감귤의 인기가 반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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