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행원·IT인력에 밀려 짐싼 뱅커들…5대銀 퇴직비용만 4.1조

입력 2021-12-28 17:33   수정 2021-12-29 02:43

“대형은행의 연령별 인력 구조를 살펴보면 2차 베이비붐세대(1968~1976년생)가 아직 절대다수입니다. 이들이 퇴직하는 10여 년 후에야 빅테크, 핀테크와 한번 승부를 걸어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A금융지주 회장)

시중은행들이 5년간 1만5000명 넘는 직원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낸 건 ‘디지털 망망대해’의 거대한 핀테크 파도 앞에서 지금과 같은 생산성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은행뿐 아니라 보험·카드회사 등도 희망퇴직이나 신입사원을 덜 뽑는 방식의 ‘느린 구조조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위적인 인력 감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강성 금융노조가 버티고 있어서다.

7개 은행 올해 희망퇴직 4088명
20여 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은행 점포 한 곳을 운영하기 위한 최소 직원은 20명이었다. 규모와 상관없이 고졸 텔러(창구 직원), 정규직 직원, 청원경찰 등의 ‘필수 인원’이 존재했고 정규직의 전문분야도 출납, 당좌, 예금, 대출 등으로 세분화했다.

2000년대 초 ‘원스톱 뱅킹’ 시대가 열리면서 은행원은 모든 은행 업무에 통달하고, 각종 펀드 상품도 파는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했다. 자산관리(WM) 경쟁이 거세지면서 고급인력이 많이 필요하던 시점(2010년대 초반)만 해도 ‘덩치’는 유효한 경쟁수단이었다. 하지만 최근 4~5년 새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대형은행에는 조직, 영업, 문화 모든 걸 디지털 환경에 맞춰 혁신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점포의 최소 필수인원은 은행별로 7~10명 수준으로 떨어졌고,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문을 닫는 점포가 속출하고 있다.

은행이 사람을 뽑아야 할 필요성은 점차 줄어든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이 올 들어 9월까지 정기 공채를 통해 뽑은 인원은 732명이다. 아직 올해 하반기 채용이 진행 중인 은행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1119명보다 30%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반대로 올 들어 7대 은행에서 희망퇴직을 통해 은행을 떠난 사람은 4000명이 넘는다.

희망퇴직에는 위로금, 취업장려금 등의 일회성 비용이 든다. 5대 은행이 2017년부터 지난 9월까지 투입한 희망퇴직 비용은 4조1042억원이었다. 1인당 3억1000만~3억5000만원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사람을 줄이는 이유는 생산성 때문이다. 올해 1~9월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의 직원 1인당 이익(충당금 적립 전 기준)은 2억8000만원으로,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1인당 평균 이익(1억8700만원)보다 49.7% 많았다.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의 자산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생산성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인력으로 대체하고 있지만
‘덜 뽑고, 많이 내보내는’ 전략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빅4 은행의 지난 3분기 기준 총 직원 수는 5만7467명으로 5년 전인 2016년 3분기(6만5641명으로) 대비 8174명 줄었다. 한 은행의 고위 임원은 “전략, 기획, 글로벌 등 본점 필수 업무를 제외한 일선 점포 인력의 필요성이 점차 줄고 있다”며 “인공지능(AI) 은행원과 디지털 자동화기기가 도입되면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 인력을 제외한 ‘제너럴리스트’로서 고객을 응대하는 전통적인 은행원이 점차 필요 없어진다는 의미다.

신규 채용은 디지털 위주로 바뀌고 있다. 문과생이 선호했던 정기공채를 통한 은행 신입 행원은 점차 줄어드는 대신 디지털, 정보기술(IT) 인력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하나은행은 올해 대규모 정기 공채를 시행하지 않았지만, IT 직렬 전문 인력을 40여 명 채용했다. 국민·신한·우리은행도 코딩테스트를 겸한 IT 인력 수시채용을 하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민영화 이후의 목표로 ‘MZ특화 플랫폼’을 제시하면서 “기존의 금융플랫폼과 완전히 다른 시스템과 조직문화에 기반한 테크기업체를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여 년간 급격히 바뀌어온 은행업이 또다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김대훈/빈난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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