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美 델라웨어州가 부러운 이유

입력 2022-01-03 17:13   수정 2022-01-04 08:03

미국 동부 대서양 연안의 델라웨어주. 미국에서 두 번째로 작은 주다. 인구가 100만 명이 안 된다. 미국 독립 당시 13개 주 중 하나였다. 미국 헌법을 가장 먼저 승인해 ‘첫 번째 주(First State)’라는 별명을 얻었다.

델라웨어주가 첫 번째인 분야는 또 있다. 글로벌 기업 본사가 가장 많다. 애플 아마존 알파벳 월마트 메타(옛 페이스북) 테슬라 등의 본사 및 자회사 주소지가 몰려 있다. 2020년 기준으로 포천 500대 기업의 67.8%(339개사)가 법인을 둘 정도다.

비결은 델라웨어주 회사법에 있다.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활동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한다. 이사회 구성 때 이사가 1명이면 된다. 나머지는 기업 재량에 맡긴다. 이사 자격이나 결격사유 규정이 없다. 정관을 통해 이사의 경영책임을 포괄적으로 면제해준다. 감사위원회 설치 규정도 없다. 정관에 따라 이사회가 주식 내용이나 조건을 알아서 설계·발행하도록 허용한다. 기업이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장치를 쉽게 도입할 수 있는 배경이다.

‘기업 천국’ 델라웨어와 달리 한국은 ‘규제 공화국’으로 불린다. 상법 개정으로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 등이 도입됐지만 투기자본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경영권 방어수단은 없다. 대주주 의결권 제한(3%룰),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화(자산 2조원 이상), 이사의 경영책임 강화 등 갈수록 기업 규제가 늘어나는 추세다. 뿌리 깊은 반(反)기업 정서와 기울어진 노사운동장은 말할 것도 없다.

기업가 정신이 싹트기 힘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 기업이 보여준 저력은 기적과도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켰다. 원자재 파동과 각국의 봉쇄를 뚫고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둔 곳도 적지 않다.

메모리 반도체 최강자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고지 점령에 나섰다. 현대자동차는 전기차와 함께 미래 모빌리티인 플라잉카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는 백신 생산 기술력을 과시했다. 셀트리온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코로나항체 치료제(렉키로나) 개발회사 반열에 올랐다. 글로벌 무대를 누빈 기업들 덕분에 지난해 한국 수출은 사상 최대치(6445억달러)를 기록했다.

스타트업 투자 열풍에 힘입어 지난해 7곳의 유니콘기업이 탄생하기도 했다. 직방 두나무 컬리 당근마켓 버킷플레이스 오아시스마켓 엔픽셀(모바일 게임사) 등이다. 예비 유니콘(기업가치 10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도 350여 개에 달한다.

문제는 올해도 삼류 정치가 일류 기업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 ‘기업 살리기 방안’이 빠져 있는 대목은 심각하게 봐야 한다. 현금지원, 복지 확대만 외쳐댈 뿐 노조법 개정, 상속·법인세율 인하, 규제 혁파에 대한 언급은 찾기 힘들다. 과거 정권의 ‘전봇대’ ‘손톱 밑 가시’ 같은 립 서비스조차 없다.

정치권 앞에만 서면 우리 기업들은 ‘산 밖에 난 범, 물 밖에 난 고기’처럼 무기력해진다. “누가 돼도 괴로울 것”이라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 간 융·복합과 영역파괴가 특징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정부와 정치권, 기업이 원팀으로 움직여야 승자가 될 수 있다.

73개 전국 상의 회장단은 얼마 전 ‘20대 대선에 바란다’는 제언을 통해 대통령 직속 법제도혁신위원회와 국회 내 법제도혁신특위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규제개혁을 전담할 독립차관제를 신설하자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네거티브 규제로 패러다임 전환, 의원입법의 규제영향 분석과 규제일몰제 등을 요청했다.

수출도, 투자도, 일자리 창출도 모두 기업의 몫이다. ‘호랑이 어금니 아끼듯’이란 속담이 있다. 몹시 아끼고 귀중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기업을 호랑이 어금니처럼 소중하게 대하지 않고서는 기술 패권 전쟁이 한창인 글로벌 대전환기에 국가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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