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집단자살'로 가는 한국

입력 2022-01-04 17:19   수정 2022-01-05 00:21

출산율 급락세가 뚜렷해지던 2009년 7월, 전재희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어록을 남겼다. “북핵보다 더 무서운 게 저출산 문제다.” 출산율 높이기 행사에 참석한 그는 “지금 시기는 국가 준(準)비상사태”라는 말도 했다. 2008년 한국의 합계출산율(15~49세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는 평균 자녀 수)이 1.19명으로까지 떨어진 것을 그렇게 화급한 문제로 봤다. 인구 유지에 필요한 최소 출산율(2.1명)의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질쳤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북핵보다 무섭다’고 말하는 건 심한 과장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팀의 보고서가 그렇지 않음을 일깨워줬다. 당시 속도로 출산이 이어질 경우 한국 인구는 2100년 1000만 명 이하로 줄어들고, 2305년에는 한국인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계산이 나왔다. 한국보다 먼저 저출산 위기가 시작된 일본의 인구소멸연도(2800년)를 압도하는 성적표였다. 2006년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문제연구소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지구상의 최우선 소멸 국가 1호’로 한국을 꼽은 배경이다.

2020년 0.84명으로까지 떨어진 출산율은 ‘전재희의 경고’를 훨씬 더 끔찍한 현실로 마주하게 한다. 1971년 100만 명을 넘었던 신생아 수가 2002년 49만여 명으로 떨어지더니 2020년에는 27만2000명으로 또 반토막 났다. 인구 감소는 그냥 ‘사람 숫자가 줄어드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저출산과 동시 진행되는 고령화로 인구구조가 기존의 피라미드형(形)에서 역(逆)피라미드형으로 바뀌면서 사회 시스템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린다. 한국은 불과 38년 뒤인 2060년 전체 인구의 중간연령이 61.3세가 되고, 일하는 사람 1명이 노인 1명을 먹여 살려야(노년부양비 91.4%) 하는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된다. 경제는 물론 교육·국방·기업·연금제도 등 나라를 지탱하는 거의 모든 부문이 대혼란에 빠진다. 2017년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에 ‘집단자살사회(collective suicide society)’라는 직격탄을 날린 이유다.

역대 정부가 이런 ‘집단자살’을 두고 보기만 한 건 아니다. 출산·보육 단계에서부터 각종 지원과 보조금을 늘려가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나름의 정책을 펴왔다. 2006년부터 15년간 쏟아부은 저출산 관련 예산만 380조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압도적인 세계 꼴찌 수준으로 더 곤두박질쳤다. 저출산 대책에만 머물 게 아니라, 역피라미드 인구구조 시대에 대비한 중·장기 안목의 국정 전환이 시급해졌다.

넉 달 뒤면 5년 임기를 마치는 문재인 정부는 이 점에서 가장 큰 비판을 받아야 한다. 긴박해진 인구위기에 대비해 사회 시스템을 개혁하고 재정기반을 강화하기는커녕 ‘역주행’으로만 내달렸다. 2016년까지 400조원이 넘지 않던 국가예산을 뭉텅이로 늘리기 시작해 올해 예산을 607조원으로 불려놨다. 그렇게 불린 돈 상당액을 한번 배정하면 되돌릴 수 없는 복지제도 확충과 공무원 대폭 증원 등 두고두고 나라에 재정 부담을 떠안기는 분야에 투입했다. 해마다 엄청난 빚을 내가며 예산을 퍼부은 결과는 탄탄했던 국가재정기반까지 허물었다. 나랏빚이 올해에만 108조원 불어나 국가부채비율이 GDP(국내총생산)의 50%를 넘어서게 됐다. 그뿐 아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에 귀 막고 ‘묻지마 탈(脫)원전’을 밀어붙여 국가 에너지 백년대계의 근본을 허물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그런 문 대통령이 엊그제 신년사에서 “막힌 길은 뚫고 없는 길을 만들어 대한민국이 세계의 모범국가가 됐다”고 자화자찬했다. 한줌의 좌익운동가들 등에 업혀 온 독선과 불통(不通)의 국정이 임기 마지막까지 요지부동이다. 더 절망스러운 건 차기 대권을 맡겠다는 대통령 후보들의 행태다. ‘민생’ ‘공정’ 등의 정치구호만 잔뜩 늘어놓으며 ‘50조’ ‘100조’ 따위의 퍼주기 경쟁으로 국민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긴박한 위기인 ‘인구감소 대재앙’에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큰 그림을 찾아볼 수 없다. 미국 작가 제임스 클라크는 “정치꾼(politician)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만 정치가(statesman)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했다. 정치꾼만 넘쳐나는 이 나라가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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