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러시아 밸브 잠그자 유럽 가스값 32% 폭등, 이게 현실이다

입력 2022-01-06 17:24  

러시아가 대(對)유럽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한 지 보름 만에 유럽 가스가격이 32% 폭등했다는 외신 보도는 한겨울 지구촌을 더 얼어붙게 한다. 우크라이나에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하려는 러시아와, 이에 반대하는 미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국 간의 긴장이 에너지 시장에 직격탄을 던진 격이다. 내주부터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와 미국, 러시아·나토 회담에 따라 상황이 호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국제 에너지시장이 지정학적 상황 변화에 매우 민감한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지난해 말 인도네시아의 갑작스런 석탄 수출 금지는 ‘중국 전력대란’으로 이어졌다. 석탄의 비중이 높아진 한국도 수급 관리를 위한 정부 긴급회의가 열렸다. 카자흐스탄에서 차량 연료가격이 급등하면서 새해 들어 최대도시 알마티 시청사가 불타고 국제공항이 반정부 시위대에 점령당한 소요 사태도 원활하지 못한 에너지가 문제였다. 카자흐스탄은 대규모 유전·가스전을 가졌으면서도 수급관리에 실패했다.

국제 정세의 급변 양상은 중동 정정(政情)에 따라 유가가 흔들리는 차원을 넘어섰다. 언제, 어느 지역에서, 어떤 돌발 상황이 빚어질지 예측불허다. 러시아의 거친 행보로 영국에선 천연가스가 보름 만에 38% 뛰었는데도 내일을 알 수 없다. 가스 석탄만이 아니다. 희토류를 비롯해 각종 산업용 원자재까지 곳곳에 지뢰투성이다. 인도네시아의 석탄 수출금지에 먼저 중국이 화들짝 비상이 결렸지만, 중국 스스로도 희토류 등의 무기화를 서슴지 않고 있다. 그만큼 국제 정세와 국가 관계는 복합적이고 가변적이다. 문자 그대로 각자도생의 시대다.

이래저래 한국에는 위기일 수밖에 없다. 자유무역과 글로벌 공급망·밸류체인 기반으로 수출대국으로 올라섰지만 앞을 막는 변수가 부쩍 많아졌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라지만, 에너지 도입에 차질을 빚으면 산업과 일상이 스톱될 수 있다. 한국의 에너지 자급률이 17% 정도로 계산되지만, 대부분이 원전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탈원전 희망가’만 불러댄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것을 보면서도 북한 경유 러시아 가스관을 건설하자는 식의 장밋빛 환상에 젖어 산다. 정부에 에너지와 식량, 필수 원자재의 안정적 조달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이 있기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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