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중심 기업에서 마케팅 전략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새해의 시작은 1월이 아닌, 10월이다. 다음 연도의 시장 트렌드를 예측하는 각종 도서가 서점에 깔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가을 낙엽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마케팅 담당자는 기업 내부에서 도출한 시장 전략과 트렌드 서적을 비교 분석하며 새해 사업계획을 가다듬는다.트렌드란 무엇인가. 트렌드와 유행의 차이는 지속성에 있다. 유행은 짧은 기간 동안 잠깐 인기를 얻다가 사라지는 사회현상으로,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예로 들 수 있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는 기부 캠페인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된 이 챌린지는 한때는 사회의 핫이슈였지만, 점차 SNS 상에서 하나의 놀이처럼 번지다가 사라져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반면 트렌드란 고객들의 가치관, 태도, 행동의 변화로 오랜 기간 지속되며 사회를 바꿔나가는 힘을 가진다. 2010년대 초반부터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가진 ‘생활에서 실천하는 환경 보호’는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기업들이 더 이상 ESG라는 단어를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로 인한 온택트 문화의 확산으로 트렌드의 변화 속도는 전례 없이 빨라졌다. 중장년층의 디지털 서비스 이용은 당연해졌고, 먼 이야기일 것 같았던 메타버스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국내 대표 소비 트렌드 분석가 김난도 교수는 2020년 트렌드 서적을 발표하며 “코로나가 바꾼 것은 트렌드의 방향이 아닌 속도”라고 말한 바 있다.
고객 트렌드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것처럼 과거부터 커피하우스와 살롱같이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에서 각종 대중문화와 여론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모임이 제한되자 사람들은 온라인 세상에서 자신과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과 가볍게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MBTI 별 특징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의 댓글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수다를 떨고, 메타버스 세상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아바타를 통해 같은 취미를 가진 랜선친구를 사귄다. 한 트렌드 서적에서는 이를 온라인 살롱 문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발판으로 앞으로는 컴퓨팅 능력과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AI가 온라인 상의 고객 이야기에 24시간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고객 트렌드 변화의 시그널을 발견하는 즉시 마케팅 담당자에게 알람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고객을 곁에서 관찰하며 고객의 생각과 행동을 파악하는 질적 연구 방법인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를 디지털 세상 속에서, AI가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컨설팅 기업 MotivBase는 빅데이터 분석에 에스노그라피를 접목하여, 고객들이 온라인 상에 남기는 수 많은 글을 상황별로 분석하여 그 속에 내포된 의미를 도출하고, 중요도를 수량화하여 고객사 관련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고객 트렌드를 어떻게 예측할까? MIT 미디어랩 디렉터인 알렉스 샌디 펜틀랜드에 따르면 인간은 개인의 사고뿐만 아니라 문화의 패턴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문화의 패턴은 수학적으로 설명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의 일상 데이터 분석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미래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다. 향후 스마트 홈,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 시티, 디지털 트윈 등이 일상화되면 AI는 개인의 온라인 세상 속 활동을 넘어 생활습관, 감정, 건강 상태 등 고객 삶의 모든 부분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지속 발전 중인 머신러닝 덕분에 미래에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나날들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문화의 패턴을 참고하여 사회의 주요한 변화를 미리 예측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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