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 부담만 키운 지정감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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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1-09 17:25   수정 2022-01-10 00:12

작년 말 기업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는 2020년 말 기준 자산 5000억원 이상인 국내 428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2017~2021년 감사보수 내역을 조사해 발표했다. 결과를 보니 감사보수가 외부감사법(외감법) 개정 전인 2017년 1230억원에서 개정법 시행 이후인 2021년 2904억원으로 136.1% 증가했다. 4년 새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이는 외감법 개정 당시부터 예견됐던 것이라 놀랍지도 않다.

매출이 적은 중소기업일수록 감사보수 증가율이 높았다. 2020년 결산 연결기준 매출 규모별로 5조원 이상인 기업은 감사보수가 2.1배 늘어난 반면 1조원 미만인 기업은 2.8배 증가했다. 규모별 보수 증가율 순위 1위는 5조원 이상에서는 KT&G(556.4%), 1조~5조원 미만에서는 한진(566.7%)이었다. 1조원 미만 기업인 해성산업은 10배(993.9%) 올랐고, 삼강엠앤티 700.0%, 일진머티리얼즈 600.0%, SGC에너지 585.7% 등이 많이 올랐다.

감사 시간도 대폭 늘었다. 회계감사에 투입한 총 소요 시간을 공개한 417개 기업을 보면 2017년 164만1122시간에서 2019년 248만1661시간, 2021년 279만6615시간이다. 표준감사시간제가 시행된 2018년을 전후로 84만539시간(51.2%) 증가했다. 감사 시간이 가장 길었던 곳은 삼성전자로, 2017년 4만6576시간에서 2021년 7만6741시간으로 4년 새 3만165시간(64.8%) 늘었다.

감사비용이 폭증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나 지정감사제, 표준감사시간제 및 주 52시간제 도입이 결정적이다. 지정감사제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로, 기업은 6년간 외부감사인을 자유롭게 선택해 감사계약을 체결하되, 이후 3년간은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자유계약 때는 회계법인이 수주 경쟁을 하느라 감사비용을 최대한 낮춰 계약했다. 감사법인을 골라 쓸 수 있는 기업이 갑(甲)이었다. 저가·출혈 경쟁이 극심했다. 그래서 도입한 제도가 지정감사제인데, 이 제도 도입 후에는 지정 회계법인이 갑이 됐다. 고액의 감사비용 청구, 고압적 자세, 이전 감사인의 국제회계기준(IFRS) 해석이 틀렸다는 주장 등 갑질도 가끔 보고된다.

지정감사제는 국가가 감사 시장에 개입한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영국에서도 2018년 전후 여러 기업 부실감사 사례가 터져, 일각에서 ‘제한된 지정감사제’ 도입이 주장됐다. 감사 품질 문제가 확인된 경우, 일반적인 교체 주기가 아님에도 감사인이 교체된 경우, 주주총회에서 감사인 임명에 (반대 비율이 50%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의미 있는 반대 표결이 있는 경우 등에 한해 감독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당국은 그 주장을 기각했다. 이유는 감사인 임명은 기업 이사회의 고유한 권한이며, 감사는 복잡한 비즈니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요구되므로 적절한 감사인을 임명하는 일을 기업 이사회보다 국가 기관이 더 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국가에 의한 감사인 선임은 투자자의 감사인 선임권을 박탈한다고 봤다. 영국은 이처럼 기업에 문제가 있는 경우조차도 국가 지정 감사를 거부했다. 자본주의 본산답다. 한국에선 문제 기업은 예전부터 당연히 지정감사를 받았다. 지정감사제는 건전하고 멀쩡한 기업에까지 3년간은 국가가 감사인을 내리꽂는다.

지정감사제에 따라 회계법인의 대형화가 시작돼 회계사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회계사 연봉도 상당히 올랐다. 무분별한 회계사 영입으로 감사 품질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불만은 높아지는데, 회계업계에선 단군 이후 최대 호황이라고 수군댄다. 연간 1000여 명을 선발하는 회계사 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래저래 기업만 죽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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