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소중립에 신중한 지도자를 보고 싶다

입력 2022-01-10 17:34   수정 2022-01-11 17:56

기후변화는 금세기를 관통하는 세계 공통 이슈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언제 본격적으로 닥칠지 모르는 불확실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200개 넘는 나라가 머리를 맞댄 적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국가 간 이해관계가 충돌해 강제력이 담보된 대처방안은 도출하지 못했지만, 지구촌 모든 국가가 예외 없이 신속히 동조해야 한다는 공통 인식까지는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각국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탄소중립 선언이 증거다.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은 세계경제 질서를 근본부터 바꿔 놓고 있다. 화석에너지로 단단히 지탱되던 탄소경제를 강제 종료시키고, 여전히 간헐성과 같은 수급 불안 요인을 해소하지 못한 채 재생에너지에 얹혀 갈 수밖에 없는 탄소중립경제로의 탈바꿈이 변화의 핵심이다.

흔히들 변화는 기회라고 한다. 하지만 탄소경제에 뒤처진 국가에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탄소경제 막판에 역전골을 터트리며 이제 막 본선 무대에 올라 8강, 4강을 넘볼 정도로 성장한, 탄소경제에 최적화된 신예 국가다. 당연히 그동안 애써 쌓아온 탄소경제에 적합한 유·무형의 최신 자산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많이 조기에 좌초시켜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탄소중립의 변화는 기회보다 위기 요인이 훨씬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근거 없이 탄소중립을 새로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둔갑시킨 선거용 구호가 난무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탄소중립이 가져올 위기는 다양하다. 첫째, 그린플레이션이다. 탄소중립은 값싼 화석에너지를 값비싼 그린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 핵심이다. 에너지비용 증가에서 비롯되는 물가상승 현상인 그린플레이션은 불가피하다. 제조업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인 한국에 그린플레이션은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린에너지 분야 성장과 일자리 증가보다 탄소기반 산업에서의 경쟁력 하락과 사라지는 일자리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탄소중립은 에너지안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에너지안보는 대개 석유, 가스의 안정적 확보에 국한됐으나, 앞으로는 희토류, 리튬, 코발트, 니켈과 같이 태양광, 풍력과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저장장치 등에 필요한 중요 광물로 확대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들 광물 자원이 석유, 가스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일부 국가에 편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화석에너지의 중요성이 탄소중립 과정에서 줄어들 것 같지도 않다. 탄소중립 추세로 화석에너지의 개발 투자가 위축돼 공급 확대가 제한되는 가운데, 향후 상당 기간 재생에너지를 백업해야 하는 화석에너지에 대한 수요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따라 덩달아 요동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작년 말 유럽 풍력발전의 예상치 못한 변동성으로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화석에너지 가격 폭등은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에너지위기의 예고편일 수 있다.

셋째, 탄소중립은 사회적 갈등 요인 하나를 추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가격 인상으로 소득계층 간 에너지접근성 격차가 확대되고, 탄소기반 유무형 자산의 좌초화와 기후변화의 피해가 일부 산업과 지역에 편중돼 산업 간, 지역 간 갈등도 증폭될 수 있다.

우리에게 탄소중립은 밝은 미래로 이끄는 기회이기보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렵게 일군 성과를 강요에 의해 포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위기에 가깝다. 물론 위기도 주도면밀하게 대비하면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논리도 없이 탄소중립을 더 빨리 더 강하게 밀어붙여 기회로 만들겠다는 선거 구호는 더 큰 위기를 재촉할 뿐이다.

탄소중립이 가져올 본격적 위기가 다음 5년 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아마도 2030세대를 포함한 다음 세대가 겪어야 할 위기일지도 모른다. 탄소중립이 미래 세대에게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현 세대의 희생을 설득하며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내딛는 신중한 지도자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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