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에 걸친 연구가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궁극적으로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크리스틴 라우 메릴랜드대 교수)
죽음을 앞둔 말기 심장병 환자가 세계 최초로 돼지 심장을 이식받고 건강하게 회복되면서 나온 평가다. 전문가들은 장기 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이 새 삶을 찾을 가능성이 열렸다고 했다.
그리피스 교수는 “심장 박동과 혈압 모두 정상”이라며 “돼지 심장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수술은)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걸음 가까이 간 획기적 사건”이라며 “이식이 필요한 환자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베넷은 현재 심장과 폐를 우회해 산소를 공급하는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에크모)에 연결된 상태로 안정을 취하고 있다. 의료진은 11일 에크모를 떼어낼 예정이다.
메릴랜드대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로 돼지의 유전자 10개를 조작해 면역거부반응을 없앴다. 돼지의 세포막에는 인간에게는 없는 특이한 당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돼지는 사람의 장기와 가장 크기가 비슷하지만 이종 장기로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돼지의 특이적인 당을 구성하는 유전자 3개를 제거하고, 인간 면역체계에 관여하는 유전자 6개를 새롭게 삽입했다. 돼지 몸에 인간 면역체계를 심어준 셈이다. 또 장기 이식에서 중요한 요소인 장기의 ‘크기’를 맞추기 위해 돼지의 심장 조직이 과도하게 커지지 않도록 성장 관련 유전자 1개를 제거했다.
돼지의 심장이 ‘체내’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대 연구팀이 뇌사자에게 돼지 신장을 연결해 3일간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했지만, 신장을 체내에 온전히 이식하지는 못했다.
미국 연방정부에 따르면 미국에서 장기 기증을 기다리는 환자는 11만 명에 달하고, 매년 6000명 이상이 이식을 받지 못해 사망한다. 국내에도 이렇게 사망하는 환자가 매년 2000명에 이른다. 박정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세계적으로 장기 부족 문제가 심각해 환자와 의료진 모두 이종 장기 시대가 열리기를 고대하고 있다”며 “이종 이식 시 필요한 면역억제제 분야도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도 이종 장기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제넨바이오는 서울대 의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과 함께 돼지 각막, 췌도의 이종 이식 임상을 준비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8월 돼지 췌도를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하는 임상 1상 시험에 대한 임상시험계획(IND)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했다. 이종장기사업단을 이끄는 박정규 교수는 “국내 첫 시도인 만큼 의미가 크다”며 “올해 안에는 승인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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