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벼랑 끝 청년들에 일할 기회 주자

입력 2022-01-12 17:22   수정 2022-01-13 00:09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한 세대로 이전 세대에 비하자면 거의 슈퍼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직업이 없다. 이게 말이 돼?” 이 날선 한탄은 2007년 출간된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 속 주인공인 -당시 ‘88만원 세대’로 통칭됐던- 20대 청년의 말이다. 15년이나 지난 지금 이들은 ‘MZ세대’라는 거창한 별칭만 생겼을 뿐, 아직도 직업이 없다. 이게 말이 되나.

지금 우리 청년들을 보자. 2000년 이후 고교 졸업생 10명 중 7명이나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고학력화됐다. 그러나 힘들게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취직이 안 될 것 같아 졸업을 미루고,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하기도 한다. 사회에 나오더라도 비정규직으로 미생(未生)의 삶을 사는 것 또한 익숙한 풍경이다. 청년층 취업자의 약 40%가 비정규직이고, 청년 4명 중 1명은 사실상 실업 상태에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청년들의 취업이 이토록 어려워진 이유는 뭘까? 제도적으로는 낡고 경직적인 노동법·제도 때문이고, 구조적으로는 지나치게 높은 대기업 대졸초임, 산업 수요 변화를 먼발치에서 보고만 있는 대학교육 등 노동시장 미스매치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일할 기회를 더 주려면 이것들부터 고쳐야 한다.

우선 낡고 경직적인 노동법·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70년간 큰 변화 없이 경직적 규율방식에 머물고 있는 우리 노동법은 이미 노동시장에 진입한 근로자에게만 유리할 뿐, 이제 막 노동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는 높은 장벽일 뿐이다. 특히 고임금과 고용 안정이라는 ‘당근’만 요구하는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 자리는 철옹성이다. 이들은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의 비정규직보다 약 3배 많은 임금을 받으며 해고당할 걱정은 거의 하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기업·정규직의 근속기간은 약 12년에 달했지만, 중소기업 또는 비정규직은 5년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제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수차례 권고한 것처럼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해야 한다. 그 방향은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를 완화하고, 원할 때 어디서든 일하게 하는 쪽이 돼야 한다.

또한 임금 격차를 줄여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소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데, 넘쳐나는 고학력 청년들은 고임금을 기대하며 대기업·공기업 취업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는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졸초임 격차가 약 2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대졸초임은 우리가 일본보다도 약 60%나 많다. 반면 300인 미만 사업장은 올 상반기에 정상적 영업을 위해 부족한 인원이 약 25만 명에 달한다. 임금 격차 해소 없이는 ‘갈 만한 일자리 부족’과 ‘인력 부족’이 병존하는 인력수급 미스매치를 풀 수 없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고임금 대기업 근로자는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공정’에 민감한 MZ세대 직원들에게 일의 가치와 성과에 따라 임금을 주는 체계로 바꾸는 것이다.

대학교육도 바꿔야 한다. 산업현장은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대학교육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정원은 2008년 141명에서 2019년 745명으로 약 5배 늘었다. 그러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정원은 16년째 55명에 묶여 있다가 최근 겨우 70명이 됐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말로만 AI·빅데이터 시대를 외치는 모양새다. 이제라도 대학에 자율성을 줘서 산업 수요에 맞게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삼성, 포스코가 추진해 청년취업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소프트웨어 무료교육도 확대해야 한다.

일자리는 곧 삶이며, 청년의 어려움은 곧 우리 사회 전체의 아픔이다. 코로나 위기로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일할 기회를 줘서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대선 후보와 다음 정부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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