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에 밀린 터키 리라화의 굴욕

입력 2022-01-13 17:37   수정 2022-01-14 01:17

터키인들이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터키인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암호화폐가 ‘안전자산’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등 시장에 역행하는 정책을 펼친 결과다.

○“리라화에 비하면 암호화폐는 안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블록체인 정보업체 체인앨리시스를 인용해 바이낸스 등 3개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작년 12월 마지막 1주일간 리라화로 암호화폐를 거래한 액수가 124억달러(약 14조7300억원)를 기록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20년 6월 초 1주일간 거래액(1억7000만달러)과 비교하면 1년6개월 만에 73배가량 불어났다.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지난해 9월 이후 40% 폭락하는 등 변동성이 극심해졌다. 터키인 사이에서는 차라리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안전한 ‘가치 저장소’라는 인식이 확대됐다. 터키 암호화폐거래소 비틀로의 에스라 알페이 최고마케팅책임자는 “터키인들은 암호화폐를 장기적으로는 투자자산,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터키인들은 미 달러에 가치를 고정해 변동성을 낮춘 스테이블코인을 쓸어담고 있다. 암호화폐 데이터 제공업체 크립토컴페어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때 스테이블코인 테더 거래에서 리라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육박했다. 달러, 유로화로 테더를 거래하는 금액을 크게 웃돌았다. 터키 정부가 지난해 자국에서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쓰지 못하도록 했지만 터키인의 암호화폐 ‘사랑’에 제동을 걸지는 못했다.
○경제정책 불신으로 암호화폐 선호
리라화가 암호화폐보다 위험한 자산으로 추락한 배경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 있다. 그는 기준금리를 인하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특이한’ 경제 철학을 갖고 있다. 미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세계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고려하는 ‘상식’과는 정반대다. 그는 금리 인상이 ‘만악의 부모’라는 생각도 갖고 있다. 저금리를 유지해야 고성장할 수 있고 2023년 대선에서 자신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기대 때문이다.

터키의 지난해 12월 물가상승률은 36%로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같은 달 터키 중앙은행은 4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낮췄다. 지난해 9월 연 19%이던 기준금리는 연 14%로 낮아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에 반대하는 중앙은행 총재를 연달아 해임한 결과다.

리라화 가치 폭락으로 에너지 수입가격이 급등하는 등 부작용이 잇따르면서 터키 정부는 여러 환율 방어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달러, 유로화 등 외화예금을 리라화로 강제 전환하라는 지시를 은행에 내릴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다.

WSJ는 경제 정책에 대한 불신이 큰 터키를 비롯한 개발도상국 국민 사이에서 암호화폐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고 승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엘살바도르는 국가 예산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현재 14%의 손실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달러 표시 엘살바도르 국채 가격이 급락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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