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올해부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를 내세워 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주주대표소송을 추진하겠다고 나서면서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직접 대표소송을 하는 것은 해당 기업과 주주는 물론 국민연금 자체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수탁위가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을 남발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금융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용본부 대신 시민·사회단체의 입김이 강한 수탁위가 나서면 정치적 판단에 따른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기업활동 및 영업에 제약이 생기고, 주가 하락은 불가피하다. 법정에서 구체적인 손해액을 입증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리고, 소송 과정에서 비용도 든다.
국민연금이 승소하더라도 손해배상액은 국민연금이 아니라 기업에 돌아가기 때문에 연금 가입자는 직접적으로 이득을 볼 수 없다. 기업도 상환받을 손해배상금 규모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재무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소송 과정에서 기업 평판이 나빠지고 주식가치가 떨어지면 주주와 가입자 모두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전 국민 노후 보장이라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쓸데없이 기업을 자극하는 행위를 시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민연금이 패소하면 비용 부담은 가입자 몫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 이미지도 타격을 받고 경영에 제약이 생긴다. 이기든, 지든 어느 쪽이든 실익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이유로 주주대표소송 제도를 운영 중인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는 공적 연기금이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건 사례는 거의 없다. 대신 해당 기업과의 물밑 협상을 통해 주주환원을 강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실익’을 챙기고 있다. 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연기금의 자국 기업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은 외국계 투자회사들의 활동 무대만 넓혀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명예교수는 “기업 대표소송은 헤지펀드나 할 만한 일”이라며 “국민연금이 이런 행보를 계속하니 연금사회주의를 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소송 당사자가 된 임원은 물론 해당 기업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가뜩이나 기업규제 관련 법안이 잇따라 도입되고 있는데 대표소송이 제기되면 기업은 불필요한 자원과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국민연금이 소송을 남발하면 국내 기업 임원들에게 소극적 행동을 강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공격적인 행동이 필요한 상황에서 기업인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도 지금은 기업 규제를 늘리기보다 기업인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독려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상법, 공정거래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 규제가 넘쳐나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전방위적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과도한 규제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병욱/고재연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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