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광산 내다 팔기 바쁜 정부…800억 손해보고 4곳 매각

입력 2022-01-17 17:25   수정 2022-01-26 10:37

한국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해외 광물자원 개발사업이 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9년 사이 6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자원외교 정책의 비리를 파헤치겠다며 대대적인 수사를 하는 한편 해외 자원 개발에 대한 세제 혜택을 줄줄이 중단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고 공급망 위기가 닥친 마당에 누구도 정책 변화를 거론하지 않아 자원전쟁 시대에 한국이 낙오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1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국내 공기업이나 민간기업·개인이 지분 투자 등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는 해외 광물자원 개발사업은 휴광을 제외하고 94개로 집계됐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 말 219개에서 57% 줄었다. 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13~2016년 55개(25%) 감소했고, 문 대통령이 집권한 2017년 이후 70개(43%)가 더 줄었다.

한국과 달리 해외 각국은 핵심 광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와 미·중 패권 경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가운데 안정적으로 자원을 조달할 해외 자원 개발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요소 수출을 제한하고 러시아가 유럽연합(EU)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줄이는 사례와 같이 주요국이 원자재를 무기화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자원 개발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해외 자원 추가 개발엔 아예 손을 놓고 있다. 그간 어렵게 확보한 모든 해외 광산을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실행 중이다. 지난해 니켈과 구리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원료의 가격이 급등(각각 34%, 51%)했는데도 한국광해광업공단은 칠레 산토도밍고 구리 광산을 매입원가에도 미치지 못한 가격에 팔아치웠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국내 정치 보복 때문에 한국의 자원외교가 중단됐다”며 “지금이라도 20년 뒤를 내다보고 정부가 다시 해외 자원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원자재·공급망 대란에도…자원개발 손 놓은 정부
한국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해외자원 확보에 적극적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처음으로 ‘해외자원 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자원외교의 기틀을 닦았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와 몽골 등을 오가며 자원외교에 본격 나섰다. 특히 세계 3대 니켈 광산인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광산 개발 사업에 한국의 민·관 컨소시엄이 2006년 참여하기로 확정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최대 자원외교 성과로 꼽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진보 정권에서 추진한 자원외교를 확대계승했다. 암바토비 광산에 대한 후속 투자를 단행했고, 코브레파나마 동(銅·구리)광산 등 세계 각지에서 자원 개발 사업을 새로 벌였다.
정치 갈등에 희생된 자원외교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자원외교는 사실상 중단됐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 개발 사업으로 공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됐다며 자원외교를 ‘실패’로 규정했다. 이 전 대통령과 그의 친형으로 자원외교 특사 역할을 한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이 해외자원 개발을 명분으로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마침 국제 원자재 가격도 급락해 투자 기업의 손실은 불어났다. 당시 검찰은 자원외교 과정에서 발생한 비리가 없었는지 수사에 착수하면서 공기업뿐만 아니라 민간 대기업의 해외자원 개발도 위축됐다.

자원외교 탄압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어졌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에너지 분야에선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를 적폐로 삼았다. 검찰은 해외자원 개발 사업 수사에 다시 나섰고, 산업통상자원부는 2018년 국내 공기업의 모든 해외 광물자산을 매각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광물확보 담당 공기업인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호주 물라벤 유연탄 광산, 미국 로즈몬트 구리광산, 칠레 산토도밍고 구리광산 등 3개 광산과 캐나다 자원 개발 업체인 캡스톤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4개 해외자산 매각 금액은 처분 당시 환율 기준 약 4800억원으로, 누적 투자금액 약 5600억원보다 14%가량 적다.

자원 확보 중단 ‘대못’ 박은 文
이후 광물자원공사는 사실상 해체돼 지난해 9월 출범한 광해광업공단에 흡수됐다. 광해광업공단의 설립 목적과 기능을 규정한 광해광업공단법(法)은 ‘해외 투자사업의 처분’을 주요 사업으로 명시했다. 광물자원공사법에 있었던 ‘해외 광물자원 개발’이란 문구는 삭제됐다. 이에 따라 광해광업공단은 광물공사 시절 매각하지 않았던 15개 해외 자산까지 모두 팔아치울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해외 광산에 대한 공기업의 신규 투자는 이제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현재로선 해외 자원을 어떻게 확보하겠다는 전략도, 정책도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자원 개발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중국의 수출 제한으로 촉발된 국내 요소수 대란,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 제한으로 인한 유럽 전역의 연료난, 인도네시아의 석탄 수출 제한 등 자원이 무기화되고 있어 리튬, 니켈, 희토류 등 핵심 자원에 대해선 정부 차원의 직접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는 현실을 마냥 외면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발생한 요소수 사태를 계기로 대외 의존도가 높은 4000개 품목에 대해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주요 품목에 대해선 수입처를 다변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직접투자 없이 단순히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한정된 수입국을 일부 넓히는 것만으로는 주요 자원의 공급망 안정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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