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해운담합 앞으로도 강력 제재" vs 업계 "해운법 무력화"

입력 2022-01-18 17:13   수정 2022-01-19 01:25


“이번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사자성어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18일 23개 해운업체의 담합(공동행위)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해운업계 및 해양수산부와 조화를 이루겠지만 결코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사자성어다. 조 위원장은 “해운업의 특수성과 중요성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경쟁당국의 역할은 변할 수 없다”며 “앞으로도 해운분야 불법 운임 담합에 대해선 엄정한 법 집행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에 해운업계와 해수부는 즉각 반발했다. 해운업계는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고, 해수부는 “업계의 공동행위가 해운법상 불법이 아니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강하게 유감을 표했다.
“법에서 정한 요건 안 지켜”
이번 사건은 2018년 9월 한국목재합판유통협회가 동남아시아 항로에서 해운사들의 담합이 의심된다고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조사 대상 기간은 2003년부터 15년간이다.

쟁점은 해운업계가 공동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법에서 정한 요건을 지켰는지 여부였다. 공정위는 23개 해운업체가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요건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해운법 제29조는 운임 공동행위를 위해 두 가지 절차적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우선 운임을 인상하기 전에 화주단체와 협의하라는 내용이 첫 번째 요건이다. 두 번째 요건은 협의 내용을 해수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공정위는 해운업계가 15년 동안 120회 운임 합의를 하면서 한 번도 화주단체와 협의한 적도, 해수부 장관에게 신고한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해운법 제29조는 △공동행위 탈퇴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부당한 운임 인상으로 인한 경쟁의 실질적인 제한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상 요건도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선사들이 합의 사항을 상호 감시·지적하면서 합의 위반 내용이 적발된 선사들에 벌금까지 부과했다는 점에 비춰 내용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23개 해운업체가 이 같은 담합의 위법성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고 봤다. 선사들이 대외적으로는 운임을 합의해 결정한 것이 아니라 개별선사 자체 판단으로 결정했다고 알리는 한편, 운임 회사별 인상폭을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1000원 정도의 차이를 두며 담합 의심을 피하려 했다는 것이다.
해운업계 “꼬리가 몸통 흔들어서야”
한국해운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공정위가 절차상의 흠결을 빌미로 해운 기업들을 부당 공동행위자로 낙인찍었다”며 “그야말로 꼬리(절차)가 몸통(공동행위 허용 취지)을 흔들어대는 꼴”이라고 했다.

해운업계는 공정위의 이번 판결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준비하는 한편 국회를 설득해 공정위가 앞으로는 해운업계의 운임 공동행위를 제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 중이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해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날 국민의힘 소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은 한진해운 파산 이후 어렵게 재건해온 한국의 해운산업을 다시 침체의 늪으로 빠뜨릴 것”이라며 “(공정거래법의) 해운 공동행위 적용을 제외하는 해운법 개정안이 국회 농해수위와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와 해수부는 해운법 개정 방향에 대한 합의된 의견을 조율해 조만간 국회 농해수위에 전달할 계획이다. 하지만 두 부처 간 합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편 공정위가 과징금을 당초 8000억원에서 962억원으로 대폭 줄인 것은 업계 및 해수부 반발과 공정위 권한을 축소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을 신경 썼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의진/남정민/김소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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