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방역불신의 사회적 비용

입력 2022-01-27 17:15   수정 2022-01-28 00:09

A씨에게 작년 연말은 ‘악몽’이었다. 알츠하이머 치매를 오랫동안 앓은 부친이 부산에 있는 요양원에서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장례를 위해 서울에 있는 몇몇 종합병원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A씨는 그렇게 아버지의 시신을 어디에도 안치하지 못한 채 거의 하루를 보내야 했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인이 폐렴이란 게 이유였다. 바로 옆에 ‘코로나19와는 무관한 사망’이라고 적혔지만 소용이 없었다.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은 3일 안에 받은 유전자증폭(PCR)검사 음성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병원 규정 때문이었다.

“시신의 코를 찔러 PCR검사를 하란 얘기냐. 코로나로 사망한 것도 아닌데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A씨의 항변에 귀를 기울이는 병원은 없었다. 그저 “‘코로나19 사망자의 경우 시신을 통해 전파될 수 있는 만큼 선(先)화장·후(後)장례를 하라’는 방역당국의 지침을 반영해 폐렴 등 호흡기 관련 사망자에 대해서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니면 말고' 식 방역대책
과학과 정부 방역지침을 들이대는 병원에 비전문가인 A씨가 맞서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A씨는 결국 경기도 끝자락에 있는 자그마한 곳에 아버지를 모셨다.

하지만 정작 A씨가 ‘열 받은’ 시점은 병원에서 퇴짜를 맞은 때가 아니라 정부가 ‘선화장·후장례’ 지침을 폐기한 지난주였다. 정부는 “시신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며 유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할 기회를 빼앗더니, 2년이 지난 뒤에야 “시신으로부터 전파된 사례가 없다”며 슬그머니 지침을 바꿨다. 그사이 6000명이 넘는 코로나19 환자가 쓸쓸한 죽음을 맞았고, A씨와 같은 수많은 호흡기 관련 사망자 가족은 장례식장을 찾아 헤매야 했다.

A씨는 “선화장·후장례에 과학적 근거가 있었을 것이란 믿음이 깨지면서 이렇게 무책임한 방역당국을 믿고 따라야 할지 분노가 치솟았다”고 했다.

문제는 A씨처럼 방역당국을 불신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새로운 방역 정책을 다룬 기사에는 “이런 정책은 대체 누가 만들고 채택합니까. 콕 집어 누구를 욕하면 되나요”란 식의 냉소적인 댓글이 어김없이 달린다. 엊그제만 해도 새로운 접종완료자 기준을 공개한 지 하루 만에 또다시 변경해 빈축을 샀다. 그나마도 격리기간 단축 지침에 적용되는 접종완료자 기준(2차 접종 후 14~90일)과 방역패스 접종완료자 기준(2차 접종 후 14~180일)을 달리해 혼란만 키운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 신뢰 얻어야 정책 성공
따지고 보면 이 정도는 약과다. 방역당국 스스로 “마스크를 쓰고 비말(침방울)이 생기지 않는 환경은 안전하다”고 해놓고선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나 홀로 식사’는 방역패스에서 빼고, 침방울이 튈 일조차 없는 ‘나 홀로 장 보기’는 방역패스에 넣은 코미디 같은 정책에 비하면 말이다.

실외가 실내보다 안전한데도 지난 추석 때 성묘 인원(4명)을 실내 가족모임 인원(8명)보다 적게 정한 것이나, 지난해 만원 지하철은 못 본 척하면서 오후 6시 이후 택시 승차 인원은 2명으로 제한한 것도 ‘마구잡이’ 정책이긴 마찬가지였다.

정부 정책의 성패는 국민 신뢰를 얼마나 얻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과학적 근거부터 내놔야 한다. 잇따른 ‘헛발질’ 정책이 낳은 ‘불신(不信)의 사회적 비용’은 생각보다 크고 오래간다. 국민 참여가 성공의 열쇠인 방역 정책에선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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