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그리스·로마 시민의 운명을 가른 '개방'

입력 2022-02-03 18:21   수정 2022-02-04 02:02

‘키비스 로마누스 숨(CIVIS ROMANVS SVM: 나는 로마시민이다)’이라는 짧은 문구가 남긴 영향은 강렬했다. 로마시민이라는 지위는 선망의 대상이자, 인신에 대한 든든한 보호막이었다. 로마는 이전의 다른 제국과 달리 ‘시민권’이라는 특권을 판도 내에 널리 퍼뜨렸다. 그리고 국민 전체가 나라의 주인이자 주권자이던 시대에 팽창을 거듭했다.

《나는 시민이다》는 국내 그리스·로마 고전 연구단체인 정암학당 회원과 서양 고대사 분야 원로 역사학자들이 서양 시민사회의 원형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민의 삶이 어땠는지를 살펴본 책이다.

아테네 등 고대 그리스에서 시민의 조건은 굉장히 까다로웠기에 시민은 특권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아테네에서 시민은 자유로운 자로 이해됐다. 어떤 외압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있는 상태를 자유로 여겼다. 시민들은 그런 자율을 바탕으로 경제와 안보, 복지와 정치의 영역에서 권리를 부여받았다.

아테네에서 자유란 기본적으로 참정의 자유였으며, 참정의 자유는 연설의 자유를 통해 보장받았다. 사유재산 소유 권리도 확립됐다. 시민은 자기 판단의 주인이 돼 사회 제반의 일에 직접 참여했다.

하지만 폐쇄적 순혈주의로 귀결된 탓에 아테네의 시민은 빛바랜 역사 속 한 장면으로 잊혀져 갔다. 기원전 451년 페리클레스가 아테네 시민 자격을 지니려면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도 아테네 시민이어야 한다는 내용의 법령을 반포한 것은 이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아테네와 달리 로마는 개방적이었다. 타지 출신 부랑자를 끌어모아 나라를 세웠던 로마는 그들에 가담하려는 자들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로마의 개인들에겐 일상생활 속 시민권이 중요했다. 자유는 핵심적인 권리였다. 자연스레 국가권력에 의한 유린에 항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데 중점을 뒀다. 시민들을 공권에 의한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구제하는 제도는 입법을 통해 수백 년에 걸쳐 마련됐다. 호민관 제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제도(appellatio)와 항소권(ius provocationis)도 시민의 주요 권리로 등장했다. 개인 간 신체와 재물 피해를 조정하는 민법 또한 발달해 사인 간 분쟁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했다. 아테네에서처럼 로마에서도 납세와 군역은 시민의 자격을 유지하는 중요한 의무였다. 그렇게 통치도 질서도 없는 바깥 세계와 로마가 구분 지어졌다.

로마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세심하게 공을 들였고, 그렇게 지킨 시민의 권리는 대제국을 지탱하는 튼튼한 벽돌이 됐다. 로마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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