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황무지서 희망 쏜 '연아의 후예들'

입력 2022-02-18 17:52   수정 2022-02-18 23:32

한국 피겨 스케이팅은 김연아(32)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피겨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천재 피겨 스케이터가 혜성처럼 등장해 ‘피겨 여왕’으로 자리잡은 기적은 어린 인재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김연아를 보고 피겨에 입문해 김연아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김연아 키즈’들이 생겨났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남자 싱글의 차준환(21)과 이시형(22), 여자 싱글의 유영(18)과 김예림(19)이 바로 이들이다. 차준환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 남자 피겨 최고 성적인 5위를 거뒀다. 유영과 김예림은 각각 6위와 9위에 올라 사상 처음으로 두 명이 함께 톱10에 들었다.

김연아 키즈들이 성장해 한국 피겨의 새 역사를 쓰고 있지만 한국의 피겨 환경은 여전히 척박하다. ‘피겨 여왕’을 배출한 나라인데도 피겨 전용 경기장 하나 없다. 이 때문에 차준환은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있는 캐나다에서, 유영은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훈련했다. 그나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수도권 빙상장들이 모두 문을 닫아 빙상장을 찾아 전국을 헤매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연아 키즈들은 기적 같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차준환은 202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종합 10위에 올라 세계선수권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둠과 동시에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2장으로 늘려 이시형에게 올림픽 도전 기회를 선사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따 차세대 주자로서 확실히 자리잡았다. 유영은 트리플 악셀을 앞세워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땄고, 김예림은 올림픽 직전 참가한 ISU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에게선 김연아의 DNA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차준환과 이시형은 각각 180㎝와 186.7㎝, 유영과 김예림은 각각 166㎝와 170㎝로 장신 선수로 꼽힌다. 김연아 역시 164㎝로 큰 편이다. 고난도 점프를 수행해야 하는 피겨에서는 작고 가는 몸을 선호한다.

하지만 김연아 키즈들은 동작이 시원시원하고 정확도 높은 점프를 구사하며 큰 키를 장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긴 팔다리와 풍부한 표정 연기로 예술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던 김연아가 연상된다. 늘씬한 몸을 뒤로 젖혀 우아한 곡선을 만들어내는 차준환의 이나바우어는 세계 최고라는 극찬을 받는다. 고난도 점프에 집중해 서커스 같은 느낌마저 드는 러시아 피겨와는 상반되는 부분이다.

Z세대 특유의 두둑한 배짱도 강점이다. 차준환은 프리스케이팅에서 첫 점프인 쿼드러플 토루프에서 크게 넘어졌지만 흔들리지 않고 나머지 연기를 모두 깔끔하게 수행했다. 유영은 쇼트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주무기인 트리플 악셀이 ‘다운그레이드’로 너무 저평가받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프리스케이팅에서 최고의 연기를 만들어냈다. 김예림은 아름다운 몸짓으로 연기를 마친 뒤 씩씩하게 걸어나오는 모습으로 ‘피겨 장군’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이들은 모두 “순위와 점수에 상관없이 내 연기를 훌륭하게 마친 것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제 이들은 더 높이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달 21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필두로 2026년 밀라노 동계올림픽까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한국 피겨의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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