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근로시간은 내가 정한다?…'제멋대로' 직원에 골머리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2-02-20 06:59   수정 2022-02-20 07:00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이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면서 회사의 재택 근로와 관련된 지시를 위반해 인사 문제로 번지는 일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전까지는 재택근로가 활성화 되지 않았기에 회사의 재택근로와 관련된 지시나 지침 위반으로 인한 징계 사례가 많지 않았다. 인사노무 담당자들 입장에서는 이런 경우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징계 수위를 어느 정도로 결정해야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참고할만한 법원 판결과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잇따라 나와 눈길을 끈다.
◆"재택근무 프로그램 설치 못해" 버티는 직원
재택근무 프로그램 설치도 거부하고 근로시간도 준수하지 않은 근로자에게 회사가 감봉 1개월의 처분을 내리면 어떨까. 법원은 징계 사유는 맞지만, 감봉은 너무하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지난해 11월5일 외국계 보험회사인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청구한 부당감봉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했다(2021구합173).

A사는 2020년 3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하자 재택근무를 실시하기로 했다. IT부서장은 직원들에게 재택 관련 교육을 안내하고, 노트북을 나눠주며 재택 프로그램을 설치하라는 등 준비를 지시했다. 회사는 전 직원 근로시간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정했고, 이 기간에 디지털 회의 등을 적극 활용하고 상시 온라인을 유지하라고 공지했다.

이 회사의 직원 B는 2007년 IT 담당 이사로 입사했지만 이후 몇 차례 강등을 거쳐 헬프데스크 담당으로 일하고 있었다. B는 과거에도 감봉·정직 징계를 받는 등 회사와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고, 이 탓에 동료 직원들과의 교류도 원활하지 않았다.

B도 회사 방침에 따라 재택근무로 전환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재택근무 8일째 되는 날, 오후 5시를 조금 지나 부서장이 "회의하자"는 공지를 보내자 B는 이메일을 통해 "무려 7년이 되도록 커뮤니케이션에서 제외됐는데 갑자기 할 일이 있나"라며 "당연히 배제됐다고 생각했고, 노트북 줄 때 사내 재택 프로그램을 깔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지도 않았다"는 답장을 보냈다. 이어 곧바로 추가 이메일을 보내 "나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하므로 다른 시간으로 회의하자"고 통보했다.

이에 회사도 즉각 징계에 나섰다. 회사는 "수 차례 공지한 근로시간을 재택근무 8일째에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은 납득이 안된다"며 △프로그램 설치 지시 무시 △근무시간 임의 수정 등을 이유로 B에게 감봉 1개월을 내렸다. 서로가 쌓이고 쌓인 감정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발한 B가 노동위원회에 부당감봉구제신청을 냈고 중노위가 회사의 손을 들어준 초심을 취소하고 B의 구제신청을 인용하자 회사가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법원 "징계 사유는 맞지만, 감봉 지나쳐"
법원은 B의 업무지시 불이행이 징계사유라는 점은 인정했다. 이미 회사가 재택근무 프로그램 설치를 3차례나 지시했고, B의 노트북에도 프로그램이 설치된 정황이 있다는 이유였다. B는 재판 과정에서 재택근무 프로그램 설치 오류 등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B가 활용법을 몰랐던 것일뿐 회사의 책임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다만 감봉 1개월은 과도한 징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는 회사와 갈등 속에서 정상적인 업무 수행에서 배제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고의로 업무를 거부한 게 아니라 공지를 숙지하지 못해 발생한 것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근로자와 회사 모두 이전까지 재택근무를 경험해보지 못해 일시에 재택근무 지침이 완벽하게 지켜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다면 B에게 주의를 주고 개선을 유도하는 게 맞지만 부서장은 곧바로 징계를 요청했다"고 지적하고 중노위의 판정이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경고나 주의 등을 통해 직원에게 개선의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징계인 감봉을 선택한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다. 공공기관 등에서는 감봉·견책을 경징계로 분류한다. 감봉 기간과 상관없이 총액은 한 달 월급의 1/10을 초과할 수 없고, 1회 감봉 금액은 평균임금 1일분의 1/2을 초과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지침 위반을 이유로 곧바로 징계에 들어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법원의 입장으로 풀이된다.

물론 노동위원회에서도 초심과 재심의 결론이 달랐고 아직 1심 판결이지만, 인사팀 직원들은 징계 수위를 결정할 때 "징계가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과거 전력을 근거로 "볼 것도 없이 징계"라는 선입견에 빠지면 냉정한 판단을 못하고 되레 후폭풍을 맞이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서 재택" 지시 어긴 근로자에겐 "견책이 적당"
여러 사례를 종합적으로 살펴 보면 회사의 재택근무 관련 지침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내릴 때엔 곧바로 중징계를 내리기 보다는 경고 처분이나 견책 등으로 주의를 환기하는 게 적절하다는 게 사법기관의 입장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특정 지역에서 재택 근무하라는 회사의 지시를 어긴 직원에 '견책'을 내린 것은 정당하다는 중노위의 판단도 있었다.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노위는 최근 회사로부터 부당하게 견책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C의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C가 속한 회사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2월부터 대구에 위치한 본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다만 급한 일로 호출 시 신속한 복귀를 위해 근무 지역은 대구 내로 한정했다.

하지만 C는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회사에 보고 없이 경기도 본가에서 7차례 재택근무를 했다.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서라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자료는 제시하지 못했다. 중노위는 "사전 승인이 있다면 본가 재택이 가능한데도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징계를 하지 않으면 직장 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판단해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C는 "같은 사유로 적발된 동료 6명은 주의 처분을 받았는데 자신은 이보다 수위가 높은 견책 처분을 받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중노위는 "다른 직원의 위반 횟수는 C보다 적고 감사 과정에서 뉘우치고 반성했다"고 꼬집었다.

고용부는 재택근로 가이드라인을 통해 "회사가 재택근무를 원치 않는 근로자에게 일방적으로 재택근무를 발령하고 근로자가 거부할 경우 단지 이를 불이행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할 수는 없다"는 해석을 내놓는 등 재택과 관련해 징계를 하는 것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노무사는 "법원은 징계 시 근로자의 비위행위로 인해 회사가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피해를 받는지와 다른 직원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도 중요하게 본다"며 "일벌백계라는 점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택근무가 2020년부터 급속도로 확산해 온 만큼 앞으로 법원 판단이 누적되면서 징계 수위 등이 좀 더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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