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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위장 평화' 잔혹사

입력 2022-02-23 17:19   수정 2022-02-24 00:13

6·25 남침을 보름 정도 앞둔 1950년 6월 7일. 북한 김일성이 ‘평화적 조국 통일 호소문’을 발표했다. 광복 5주년을 맞아 8월 5~8일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6월 15~17일 남북 민주주의 정당 및 사회단체의 대표자 회의를 열자고 했다. 6월 10일에는 북이 억류 중인 조만식과 남에 수감된 남로당 지도자 두 명을 교환하자고 했다.

6월 19일에는 ‘남북 국회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을 제안하며 21일 남북 국회 대표 회합을 서울이나 평양에서 갖자고 했다. 연이은 평화 공세에 우리 측은 빗장을 열고 23일 밤 전군의 비상경계령을 해제했다. 24일 토요일엔 장병 외출·외박과 농번기 휴가까지 시행했다. 다음날 새벽 4시 북한은 38선을 넘어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잿더미로 변한 국토에 300만 명의 사상자가 널부러졌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통일”을 외치면서 외부엔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고 선전했다. 그는 “폴란드와의 불가침 협정을 준수하겠다. 오스트리아를 합방할 의도가 없다”고 장담했다. 이 말에 속아 뮌헨 평화협정(1938)을 체결한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진정한 평화가 왔다”고 했다. 국민도 ‘전쟁보다 평화’에 솔깃했다. 2년 후 나치의 런던 공습으로 영국인 4만8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과 남·북베트남이 맺은 파리 평화협정(1973)도 그랬다. 협정 체결 직후 방한한 헨리 키신저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제 베트남에 평화가 왔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박 대통령이 “곧 공산화되겠네”라고 하자 “염려 말라”고 했다. 미군 철수 후 베트남은 공산화됐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일으킨 푸틴은 지난주 “접경지역에서 훈련을 끝낸 병력이 복귀하고 있다”며 증거자료까지 공개했다. 그러나 거짓이었다. 결국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으로 진군 명령을 내렸다. 이전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미국 영국과 맺은 ‘안전보장 양해 각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학자들은 인류 역사에 크고 작은 평화협정이 8000번 이상 있었고, 평균 유효기간은 2년 남짓이라고 말한다. 나치는 ‘게르만 민족 통일’을 내세우며 1차 세계대전을 벌였다. 북한은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며 6·25를 일으켰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보면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로마제국 전략가 베게티우스의 명언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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